[쉬퍼스저널 이영종 기자] 지난 6월 25일부터 집단운송거부에 나선 화물연대가 요구하고 있는 사항들은 지난 2008년 6월 총파업 당시의 요구안과 마치 ‘평행이론’을 보듯 닮아있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 물류운송사업 종사자들의 근무 환경에 대한 화주사 및 운송․주선사들의 인식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다가오는 대선과 총선으로 인한 국회의 개원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화물연대의 생각이 6월이라는 시기를 선택했다. 이에 쉬퍼스저널은 이번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를 집중 점검하고자 한다.
2008년 당시 화물연대는 ▲종합적 유가 인하 및 보조금 지급 확대 ▲정유사에 대한 규제 강화 ▲대중교통 공공성 강화 ▲에너지 수급구조 다변화 ▲표준운임제 도입 등 5개항을 정부에 요구했다.
2008년에도 유가가 급등함에 따라 경유 가격이 치솟았다. 운송비용 가운데 50%를 차지하는 유류비의 부담이 커짐에 따라 화물운전자의 수익이 크게 감소해 불만이 제기됐었다. 화물연대는 이에 정부에 유가 인하 및 보조금 지급을 요구했다. 정부는 화물운송제도 개선방안 법제화와 고속도로 통행료 대상차량 확대, 표준운임제 도입 등의 사항을 타협안으로 들고 나와 집단운송거부 사태를 일주일만에 마무리 지었다.
협상 이후엔 곧바로 유가연동보조금 569억원을 추가 지급했고, 도로비도 1년간 인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현재까지 협상이 진행 중인 표준운임제 문제를 제외한 다른 4개의 약속사항도 이행한 상황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당시 화물연대의 요구는 단순한 운임 인상만을 바란 것이 아니라 물류운송사업의 근본적인 개선을 원했던 것이다.
윤창호 화물연대 사무국장은 “요구사항에 적힌 문구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기본적인 입장에선 2008년 6월에 파업할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며 “당시 7단계에 이르는 하청단계가 현재 4~5단계로 줄었다고는 해도 이 또한 엄연히 불법이다. 표준운임제를 시행한다면 중간 단계 물류비용 상승을 우려하는 화주사 입장에서도 다단계 하청을 꺼리는 등 구조적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화물연대의 핵심요구안인 표준운임제를 살펴보면 화물연대 측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표준운임제를 규정하는 조항을 신설해달라고 요구하지만 국토해양부는 기존의 신고운임제를 유지하면서 시행령ㆍ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표준운임 시행을 권고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 경우 표준운임제를 시행하지 않더라도 이를 제재할 만한 과태료 조항 등이 없어 유명무실한 조치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화물연대의 주장이다.
표준운임제 도입 논란은 우리나라 화물운송체계의 고질적 문제인 다단계 하청구조와 지입차제도 때문이다. 운송업체가 화물차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입차주에게 화물을 위탁하는 구조다. 화물차주가 자신의 돈으로 차를 구입해도 등록은 자신이 아닌 운송사 명의로 하는 이중구조다. 실제 화물을 운송하는 화물차주는 운송업체와 위수탁 계약을 맺고, 화주(화물 주인)로부터 운송사와 알선업체 등 2~4단계를 거친 화물을 수주해 운송하는 것이다. 더구나 화물차주는 화물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특수고용직인 이들은 노조를 만들지도, 단체교섭을 하지도, 최저임금도 적용받지 못한다.
다단계 하청구조 개선 필요
화물연대는 화물운전자가 현재 받는 운임의 58%가 기름값 지출로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4단계 알선업체를 통해 물량을 받는 차주가 한 달간 300시간을 일했을 때 실 순수입은 69만원에 불과하다는 것. 이러한 문제는 지난 2008년과 다를 게 없다.
다단계 하청 구조와 지입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화물연대의 주장이다. 현재 지입제는 화물운전자들이 개인 사업자로 운송업체에 등록해 물량을 받아 목적지로 배달하고 그에 따른 적정 운임을 받는 구조다. 하지만 다단계 하청구조를 가지다 보니 화물운전자와 화주 사이에 2개에서 많게는 4개까지 운송업체가 있어 다단계 하청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런 다단계 구조는 화물운전자가 제대로 된 운임을 받지 못하게 만든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40ft 컨테이너를 부산에서 서울로 왕복할 경우 서류업무만 하는 운송업체가 운임의 37%를 가져간다.
지난 2008년 최저 수입 보장 차원 합의
화물연대 "권고수준 불과 실효성 없어"
정부 "법으로 강제하면 불법 양산 우려"
'표준운임제'의 필요성
화물연대는 이러한 구조적인 다단계 문제 해결책으로 표준운임제를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운송사와 화물노동자 분배 구조 분석’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 등 9개 대형 운송회사들은 2008년 대비 지난해 육상운송 매출이 32% 증가했다. 반면 화물노동자 운임 총수입은 0.2% 증가에 그쳤다.
화물연대는 2003년과 2008년, 총파업 당시 표준운임제를 첫 번째 요구사항으로 내세웠다.
표준운임제 도입은 운송사가 화물운전자에게 지급하는 운임의 적정가격을 정해 최저임금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표준운임제를 맞춰주지 못하는 중간업체들은 자연히 정리되면서 다단계 착취 구조는 개선될 수 있다고 화물연대는 주장한다.
정부도 이에 공감하고 2008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표준운임제의 법제화 추진을 약속했다. 당시 정부는 총리실에 '표준운임제 도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표준운임제 도입 방안을 논의했다. 최근 정부는 표준운임제 시행을 위한 중재안을 내놨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이 중재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화물차주에게 최저운임을 주도록 법적 강제력을 가진 방안이 아니라 단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정부 중재안에는 처벌조항이 없기에 화주와 운송업체가 이를 안 지켜도 방법이 없다"며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위반 시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토부 측은 이번 파업을 두고 ‘정당성을 상실한 무리한 집단행동’이라며 파업 초기부터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운송료 인상 문제는 화주업계 및 운송업계가 화물연대와 자율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도록 대화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토해양부는 화물연대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파업을 조기에 노력하겠지만, 운송을 거부하는 화물운전자에게는 6개월간 유가보조금 지급을 중지하고 운송방해 등 불법행위에 대해선 정도에 따라 화물운송종사 자격을 취소 또는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교섭진행했지만..입장차만 확인
정부와 화물연대가 지난 27일 교섭을 진행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등을 돌렸다. 화물연대는 정부 측에 ‘끝장 교섭’을 하자고 제안했고 정부는 고심 끝에 이를 수용했다.
국토해양부는 27일 오후 2시 10분 과천시 별양동에 위치한 국토부 항공별관 회의실에서 화물연대본부와 파업 해결을 위해 교섭을 가졌다. 양측은 3시간 가 량 교섭을 진행했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 교섭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듯이 1차 교섭에 불과했다.
화물연대의 요구사항인 표준운임제와 운송료 인상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했을 뿐이다. 표준운임제의 법제화와 운송료 30% 이상 인상안을 제시한 화물연대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국토부는 운송료 결정은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화주들의 운송료 인상폭이 화물연대의 요구와 입장차가 큰데다 표준운임제 역시 정부의 입장이 절대불가여서 당분간 양측은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