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퍼스저널 전수윤 인턴기자] 1914년 1월 7일, 낡은 프랑스 크레인 보트인 알렉산드르 라 밸리(Alexandre La Valley)는 통통거리며 태평양으로 들어갔다. 이 선박이 새롭게 건설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 첫 번째 주자다. 100년 전, 전 세계 해운 운송의 역사는 이 순간을 계기로 새롭게 쓰여졌다.
파나마 운하의 건설 이후 선박들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가는 새로운 항로를 찾게 됐다. 남아프리카의 끝에 있는 케이프 혼을 돌아가는 항로보다 8000마일 짧은 거리의 새 항로를 이용하며 항해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운하의 등장은 해운업계에 이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건조되는 선박의 크기가 제한됐다. 운하의 너비와 고정 장치 때문이다.
운하를 통과하려면 선박의 너비는 32.2m 이하여야 한다. 이를 넘어서는 선박은 비좁은 수로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유를 운반하는 초대형 유조선과 몇몇 초대형 항공모함을 제외하고, "파나마 운하 통과 제한" 크기를 넘어서는 선박 제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사들이 파나마 운하를 이용 할 것을 대비해 ‘파나막스’ 이하의 선박만 구매했기 때문이다.
영국 뉴캐슬 대학의 군함 설계자 폴 스톳(Paul Stott)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무역량은 사실상 전체 세계 교역량의 2.5-3%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은 매우 적은 양” 이라고 말한 그는 “하지만 선주의 입장에서 소유하고 있는 선박이 파나마 운하의 제한선을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선박의 가치를 높이는데 필수적이다” 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운하가 폭을 49m로 넓히는 대규모 재건축에 돌입한 것이다. 이 변화는 선박 건조업계 기준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됐다. 선주들은 이미 조선업체들에게 폭이 더 넓고 큰 선박을 주문하고 있다. 동시에 해군 엔지니어들도 새로운 군함의 디자인을 시작했다.
영국 왕립 조선학회(International Journal of Maritime Engineering)는 운하 너비의 변화가 더욱 친환경적이고 연료 효율성이 높아진, 새로운 선박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톳은 "선박이 더 커질수록 운반하는 화물의 톤/마일당 사용되는 연료는 줄어든다" 며, " 11만 DWT의 증가분마다 톤/마일당 연료 사용량을 16%씩 감소 시킬 수 있다" 고 했다.
공기방울에 둘러쌓인 거대한 물체
하지만 폭이 더 넓어졌다고 해서 효율적인 선박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엔지니어들은 거대한 선박들이 과거 어느때보다 바다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항해하도록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업계의 기대가 가장 큰 기술 중 하나는 ‘에어 루브리케이션’이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이것은 공기 방울로 선박의 겉을 담요처럼 덮어서 마찰력을 줄이고 연료를 절약하는 기술이다.
미국 미시간 대학의 군함 설계와 해군 엔지니어링 부서의 스티븐 세시오(Steven Ceccio)는 “우리가 사고자 하는 것은 바닷물을 선박의 금속 표면과 분리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기체를 액체와 금속 사이에 넣는다면 이것은 가능해진다” 며, “기체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마찰력의 감소도 높아진다” 고 말했다.
즉, 선박의 표면에 난 구멍으로 물과 선박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공기 방울을 불어내는 것이다. 이 기술은 선박의 마찰력을 80%까지 줄일 수 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과거에 이미 등장한 적이 있다. 60~70년대에 러시아 과학자들이 몇 년에 걸쳐 바다에서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더 발전되지는 못했다. 구형 선박들에 새로운 기술장비를 장착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엔지니어들이 이 기술의 완벽한 적용법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기방울들은 선박의 마찰력을 줄일 수 있지만 동시에 선박의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터빈의 효율성도 감소시킬 수 있다. 혹은, 선박의 외형이 알맞지 않으면 기껏 불어낸 공기방울들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선박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선박의 표면 근처, 실제로 마찰을 일으키는 부분은 0.1㎜도 되지 않는 두께다. 그렇게 선박의 표면과 가까운 곳에서 문제가 되는 마찰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기술을 발전시키기 이전에 공기방울과 물이 만나는 지점, 경계층에 적용되는 물리학(boundary layer physics )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했다.
공기방울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이론은 매우 복잡해서 완벽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기술을 선박에 적용하는 것은 간단했다. 엔지니어들은 선박 하체의 평평한 바닥부분에 갑판의 압축기와 연결되어 있는 구멍을 낸다. 중요한 점은 딱 필요한 만큼의 공기만 주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적게 내보내거나 너무 많이 내보내면 효과가 없다. 정확한 양의 공기방울들이 선박 아래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선박이 바다를 활주하게 만든다.
최근 미쯔부시 중공업이 “미쯔부시 에어 루브리케이션 시스템”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에어 루브리케이션 시스템의 상업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한 선박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10% 감소시켰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효율적으로 디자인 된 선박은 이론적으로 이 수치를 35%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로인해 앞으로 등장하는 초대형 선박에 이 새로운 기술의 주문이 이루어지고 있다.
작년 후반 곡물 대기업인 아처 대니얼스 미드랜드(Archer Daniels Midland)는 혁신적인 선박 디자인, 추진 시스템, 그리고 에어 루브리케이션 기술을 지닌 3개의 곡물용 벌크선을 주문했고, 새로운 선박들이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35%까지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나마 운하가 처음으로 해운업계의 혁명을 불러 일으킨 후 정확히 100년 만에 파나마 운하 재건축은 다시 한번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