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은 새롭게 열리는 선박평형수처리(BWMS) 시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 세계 선박에 평형수 처리시설이 의무화되는 경우 그 시장 규모는 최소 40조원, 많게는 9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경기 불황 속에서 새 시장을 선점하려는 각국의 경쟁도 벌써부터 뜨거워지는 모습이다.
한국선급(회장 박범식)은 2017년 발효될 선박평형수처리장치 시장의 대변혁기를 맞아 발빠른 대응전략에 나섰다.
지난 4일 한국선급(KR, 회장 박범식) 기자간담회를 통해 선박평형수 관리협약의 최근 동향 및 KR 대응전략을 밝혔다.
KR은 선박평형수처리장치로 국내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테크로스, 파나시아, 현대중공업 등이 개발한 14개 BWMS(선박평형수처리장치)제품에 대한 적합성 시험과 미국해안경비대(USCG) 형식승인 시험 품질관리와 보증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선급은 경쟁 선급을 제치고 노르웨이선급(DNV)과 함께 USCG 형식승인 시험기관(IL)으로 지정될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제협약이 발효되면 BWM(선박평형수) 처리기술 관련 자문 역할 등 KR의 업무가 폭주할 것이다. 한국선급의 총 3,000여척 중 2,200여척이 BWM 협약 적용 대상이다. 협약 발효 전 1년 안에 이들 선박이 평형수관리계획(BWMP)을 한국선급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평형수관리협약증서(IBWM)도 비치해야 한다.
선박평형수는 선박 운항 때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 밑바닥이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넣는 바닷물을 말한다. 화물을 선적하면 싣고 있던 바닷물을 내버리고, 화물을 내리면 다시 바닷물을 집어넣어 선박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또 우측의 탱크에 짐을 많이 실었을 경우 왼쪽 탱크에는 그 만큼의 바닷물을 채워넣어 좌우균형을 맞추는 방식이다.
문제는 선박에 화물을 싣기 전 전체 배의 무게를 조절하기 위해 평형수를 빼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화물을 싣고 한국을 오가는 선박은 한국에서 바닷물을 넣었다가 미국에서 빼는 것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 서식하는 유해성 플랑크톤이나 박테리아, 해양 생물 등이 평형수에 실려 미국 바다로 이동을 한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한 해에만 100억톤 이상의 바닷물이 평형수로 이동이 되고, 이를 통해 7,000종 이상의 해양생물도 함께 이동을 한다. 이 평형수 안에는 플랑크톤 등 해양 생태계 교란, 해양 오염 등의 문제가 지적돼 왔다.
이 중 상당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해 죽게 되지만, 생명력이 강한 담치 같은 생물은 살아 남아 생태계를 교란시키게 된다. 미국은 최근 외래해양생물에 의해 2050년까지 1,340억 달러의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바다의 유엔’이라는 IMO가 2004년 ‘선박 평형수 관리 협약’을 체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평형수에 들어온 생물이 살아 있는 채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선박에 처리시설을 의무화하는 내용이었다. 일종의 ‘선박 정수기’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한 때 식용으로 들여오던 외래종인 황소개구리와 농어의 피해 규모가 만만찮다. 토착생태계의 파괴의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어 그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피해 규모가 상당하다. 1988년 미국 오대호에서 홍합의 일종인 얼룩줄무늬담치가 발견됐다. 얼룩줄무늬담치는 원래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흑해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중생물이다.
얼룩줄무늬담치는 오대호 지역에서 토종 담치류를 몰아낸 것은 물론이고, 상수원이나 공업용수 시설장치에 들러붙어 파이프를 막아버리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피해금액만 5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학자들은 이곳에 얼룩줄무늬담치가 유입된 경로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 선박평형수였다.
이 때문에 국제해사기구는 해양을 누비는 선박이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를 장착해 해수전기분해, 오존 살균, 화학물질 사용방식 등의 처리 후 배출하도록 하는 선박 평형수 관리법안을 제정했다.
해양 생물들이 선박의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한 선박평형수를 통해 국경을 넘나들며 생태계 파괴에 주범이 되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국제해사기구(IMO)는 생태계 교란 방지를 위해 선박에 평행수 처리설비 설치를 강제화하는 '선박평형수관리협약'을 2004년 2월 채택해 10년이 넘도록 방치해 오다 2017년 말에 발효할 예정이다.
이에 유엔 산하 IMO는 해양오염을 막기 위해 새로 제조하는 선박은 2012년부터, 현재 영업 중인기존 선박은 크기에 따라 2014년부터 2020년까지 IMO의 승인을 받은 선박평형수 처리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또 미국은 이미 2012년 처리설비를 장착한 선박만 미국 영해에 평형수를 배출할 수 있도록 했다.
KR에 따르면 선박평형수협약이 발효될 경우 향후 5년간 약 40조원의 세계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한국과 일본 등 44개국이 협약을 비준해 30개국 기준은 넘었지만, 선복량은 32.8%로 발효 조건에 약간 못 미친다. 중국이나 싱가포르, 홍콩, 파나마 등 선박 무역 강국들이 비준을 하지 않은 탓이다.
발제에 나선 협약법체팀 김회준 책임은 “이들 중에 한 나라만 비준해도 발효 조건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며 “이달 말 있을 IMO 총회에서 추가 비준국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KR의 전망대로라면 협약 발효 시점은 12개월 뒤인 내년 말이 된다. 이렇게 되면, 협약 비준국 내 바다에서는 처리시설을 거치지 않은 평형수는 버릴 수 없게 된다.
전 세계 5만7,000척의 선박이 새로 처리설비를 설치하게 되며, 신규 선박까지 합치면 5년 동안의 시장 규모가 총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국 해양공학연구소는 시장 규모가 이보다 2배가 넘는 800억달러(93조원)에 달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선급 박범식 회장은 “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가 제정한 선박 평형수 관리법은 해양 생태계 보호 차원에서 새로 짓는 선박은 물론 기존 선박까지 모두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를 의무적으로 탑재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 법이 발효되면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분야 시장은 40조원 규모, 아니 더 나아가서는 그 배 이상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IMO협약 발효에 가장 적극적이다. 파나마 등 해운 강대국들이 머뭇거리는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들 국가들이 미적대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력 부재다. 자체적으로 처리시설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으면 해외에서 전량 수입을 해야 하는데, 비용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보통 선박처리 시설을 하나 설치하는데 비싼 것은 100만달러(11억5,000만원 가량) 정도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한국은 2007년 선박평형수 관리법을 제정하는 등 일찍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다. 2003년부터 국내 기업을 지원, 평형수처리 기술 개발에도 앞장서 왔다. 협약이 발효되면 IMO가 승인한 기술을 이용한 설비만이 허용되는데, 승인된 37개의 설비 기술 중 14개(35%)를 한국 기업이 보유하고 있다.
테크로스, 파나시아, 현대중공업 등 2010~2014년 누적 설비 수주액은 1조4,425억원으로, 전 세계 수주액(2조6,001억)의 55%에 달한다. 압도적인 점유율이다. 박 회장은 “국내 선박평형수 처리설비산업은 국제해사기구(IMO)의 해양환경규제를 기회산업으로 활용해 세계시장을 선점한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최근 5년간 약 1조 4000억 원으로 세계시장의 55%를 수주했다”며 "늦어도 내년 말이면 법안이 발효될 것으로 예상돼 시장 경쟁이 뜨거울 것으로 전망한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테크로스 전기분해 원리를 이용한 ECS(Electro-CleanTM System)라는 장치는 국제해사기구 법안보다 강력한 미국 캘리포니아 법안도 충족하는 강력한 미생물 처리 능력으로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다”며 “2011년 12월 지식경제부로부터 '국내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와 함께 신제품 인증을 받아 매출도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해 천억대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선박평형수 기업들은 2017년 국제해사기구 법안이 발효되면 매출은 더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해양수산부와 협약을 통해 더 강력하고, 더 효율적인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일부 제품은 국제해사기구 기본승인을 획득했다.
김회준 책임은 “국내 기업이 개발한 14개 BWMS(선박평형수처리장치)제품에 대한 적합성 시험을 통해 선박평형수 처리기술의 우수성과 높은 신뢰성이 입증됐다”며 “미국해안경비대 형식승인 시험 품질관리와 보증에 적극 나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장착 못 한 국내선박은 1,400여척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떨어진 발등에 불이다. 조선업계엔 BWM협약이 새로운 기회가 되겠지만 선사들에겐 큰 비용부담이 될 거란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현재 BWMS의 평균 단가는 65만달러로, 한화로는 약 8억원 수준이다.
박범식 회장은 BWMS의 평균 단가는 한화로는 약 8억원(65억달러)에서 많게는 10억원 정도로 높은 가격이다“며 ”앞으로 평형수처리장치뿐 아니라 배기가스저감장치 탑재도 의무화할 예정인데, 이 장비는 평균단가가 160만달러로 두 장치 모두 탑재할 경우 선박 1척당 최소 200만달러 가량 의 비용이 상승할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