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인 'HMM 알제시라스(HMM Algeciras)호 [사진=PPA 연합]
가자지구
전쟁이 휴전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우회 운항이 이어졌던 홍해·수에즈 운하 항로가 정상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물류 흐름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는 한편, 국내 해운업계는 수에즈항로 재개가 컨테이너선 시황 전반에 새로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우회 항로 해제가 운항 거리 단축으로 이어지면 그동안 공급을 억누르던 ‘톤마일 효과’가 약화되고, 이미
확대된 선복량과 겹치면서 운임 하락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전쟁 이전
수에즈항로는 유럽·지중해·중동을 잇는 핵심 무역 통로로 기능해
왔다. 글로벌 해상 물동량의 약 12%, 컨테이너 교역 기준
약 25~30%가 이 경로를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후티 반군의 공격이 이어지자 글로벌 선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노선을 선택했다. 항해일이
최대 10~14일가량 늘어나면서 운항 효율성은 떨어졌지만,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선복 공급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운임 하락 속도가 제한되었던
배경으로 평가된다.
국내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희망봉 우회에 따른 항해 거리 증가가 일정 부분 운임을 떠받치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수에즈항로 정상화가 현실화될 경우 공급 측면의
완충 장치가 약해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실제 글로벌 리서치
기관들은 수에즈항로 회복 시 컨테이너선 톤마일이 하락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공급 압력이 다시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감소 폭에 대해서는 기관별로 차이가 있어 일률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함께 나온다.
국제 해운
시장에서는 이미 상당한 선복 증가가 진행 중이다. 클락슨리서치(Clarksons
Research)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에 걸쳐 글로벌 컨테이너선 인도 물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팬데믹 기간 고운임을 경험한 주요 선사들이 대규모 발주에 나섰고, 그
물량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한 영향이다. 신조선 투입은 대형 선사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중견·중소 선사들은 경쟁 강도가 높아지는 구조 속에서 운임 협상력과
네트워크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선박
폐선 속도 역시 예년에 비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IMO 환경 규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강도 높은 규제 도입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노후선박이 시장에서 즉각적으로 퇴출되는 구조는 아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선복량은 단기간 내 크게 축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컨테이너 시장은 향후 공급 증가와 경기 둔화 흐름이 병행되며 시황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에즈항로
정상화는 산업계 전반에는 물류비 안정이라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유럽행 화물 운송 시간 단축, 중동·북아프리카 노선 복귀, 선박
연료비 절감 등은 화주들의 비용 절감으로 이어져 제조업·수출기업에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해운업계 내부적으로는 시황 안정과 직결되는 운임이 약세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복합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국내 해운업계는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선복 재배치와 운항 효율성 회복에 따른 운임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스폿 운임 중심 시장에서는 선사 간 경쟁이 다시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선사들이 우회 항로 해제 이후 서비스 재배치 과정에서 공급 확대를 본격화할 수 있다”며 “중소·중견 선사들은
네트워크 규모와 장기계약 비중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어 시장 흐름을 면밀히 지켜볼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국내 해운업계가 단순 운임 의존도를 낮추고, 네트워크 품질·선대
효율성·디지털 운항 기술 등 비운임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수에즈항로 정상화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물류 안정이라는 긍정적 요소를 담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공급 환경 변화가 국내 해운업계의 시황 대응력과 전략적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