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해운물류산업이 기나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와 반등할 것이란 전망에 지구촌 곳곳에서 희망찬 뱃고동이 울리고 있다. 해운물류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잇따르면서 항만 확장, 컨테이너 터미널 건설 등 인프라 확대 움직임도 활발하다. 일부 지역에선 치열한 해운물류 인프라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파나마운하 확장 공사가 한창인 중남미지역이 그런 경우다. 중남미의 해운물류 인프라 경쟁은 파나마에 과테말라, 니카라과, 온두라스, 콜롬비아 등 주변국들이 도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파나마, 운하 확장으로 부푼 기대감 중남미지역에서 해운물류 인프라 확대 경쟁을 주도하는 나라는 파나마다. 편의치적국가로 해운업계에 널리 알려진 파나마는 중미와 남미를 연결하는 지리적 장점과 파나마운하라는 인프라 덕분에 일찍이 해운물류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를 토대로 파나마는 중남미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의 물류허브를 꿈꾸며 파나마운하 확장, 컨테이너항만 확충, 물류 연계성(connectivity) 개선, 자유무역지대 설치운영, 선박등록제도 개선 등을 추진해왔다. 특히 파나마는 운하 확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운하 덕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파나마운하는 미국이 1904년 공사에 착공해 1914년 개통했다. 전체 길이가 77㎞에 달하는 파나마운하의 특징은 수에즈운하와 달리 갑문식이라는 점이다.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선박은 태평양 연안의 미라플로레스 갑문과 페드로 미구엘 갑문, 대서양 연안의 가툰 갑문(가툰 호) 등 3개의 갑문을 거쳐야 한다. 선박이 태평양에서 파나마운하에 진입할 경우 미라플로레스 및 미구엘 갑문을 지나 해수면보다 26m 높은 가툰 수로를 통과하는 방식으로 8시간 만에 대서양(카리브해)에 도착할 수 있다.
파나마는 1999년 12월 말 미국으로부터 운하 운영권을 완전히 넘겨받은 뒤 적지 않은 수익을 거둬들였다. 2005년 운하 통행료 수입만 12억 달러에 달했다. 이에 머물지 않고 파나마는 운하를 확장하고 있다. 선박의 대형화 추세에 맞춰 운하 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파나마의 운하 확장은 2006년 국민투표를 거쳐 결정됐다. 파나마운하관리청(Panama Canal Authority·ACP)은 스페인의 건설업체 사시르(SACYR)가 주도한 컨소시엄과 계약을 맺고 운하 폭을 33m에서 49m로 넓히는 공사를 2009년 시작했다. ACP는 애초 운하 건설 100돌을 맞은 올해까지 확장 공사를 마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사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초과 공사비 문제로 최근 중단됐다가 재개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내년으로 완공이 미뤄졌다.
그럼에도 파나마 정부와 국민은 운하 확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운하 확장이 파나마의 해운물류강국 목표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확장 공사가 마무리될 경우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의 운하 통과가 가능해진다. 확장 전에는 ‘파나막스급’(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라 불리는 선박(컨테이너선 기준 5000TEU)만 통과할 수 있었다. 통과 가능 선박이 커지면 그만큼 물동량과 통행료 수입이 늘어나고, 경제적 가치도 커진다. ACP는 2005년 150억 달러였던 파나마운하의 경제적 가치가 2017년 500억 달러, 2025년 1005억 달러까지 늘어나고, 통행료 수입은 2005년 12억 달러에서 2025년 62억 달러로, 20년 동안 5배 남짓 늘어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또 ACP는 운하 통행료 수익 가운데 정부 전입금 규모도 2005년 4억8900만 달러에서 2025년 42억 달러로 늘어나 파나마 살림살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프라 확충해도 고급인력 태부족
운하 확장과 더불어 파나마는 해운물류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차기 파나마 대통령으로 유력한 정치인이 대선공약으로 해운물류 중심의 성장을 제시할 정도다. 코트라 파나마무역관에 따르면, 집권 여당인 민주변화당(CD)과 자유공화당(MOLIRENA)당의 연합후보 호세 도밍고 아리아스(Jose Domingo Arias)는 파나마운하 확장 후 늘어나는 물동량 처리를 위해 물류 관련 부서들을 통합한 전담 부서를 설치해 현대적인 통합 운송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물류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교육센터를 설립 계획도 발표했다. 아리아스는 차기 파나마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 결과 30% 후반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20% 초반대의 두 야당 후보를 크게 앞서고 있다. 올해 5월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를 거쳐 7월 출범할 임기 5년의 신정부를 이끌게 될 가장 유력한 후보인 셈이다.
운하 확장뿐 아니라 파나마는 콜론(Colon) 자유무역지대와 가까운 라르고 레모(Largo Remo) 섬 인근 뉴 포스트에 1만3000TEU급 이상 컨테이너선이 정박할 수 있는 대규모 다목적 항만 건설도 추진한다. 약 80억 달러(약 8조5000억원)가 투자되는 다목적 항만 건설을 위해 ACP는 스페인의 투자회사인 린덴 파트너스와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CP는 또 대서양 연안에 연간 200만TEU의 컨테이너를 운하철도(PCR)로 수송 가능한 환적항만 건설을 계획중이다.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PSA파나마국제터미널도 운하 확장 후 물동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물류처리시설과 선박 접안시설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파나마는 해운물류 육성에 필요한 IT 인프라도 갖출 예정이다. 신항만 건설이나 터미널 확장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파나마무역관은 지난 2월 리카르도 키하노 파나마 상공업부 장관이 “여러 기관과 협회 및 업체들을 연결시켜 정보 공유와 의견 수렴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인터넷 물류포털과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파나마상공회의소도 “첨단 IT 기술을 교환하고 국제적인 포워딩업체와 항공운송업체의 참여를 통해 파나마의 물류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파나마 물류박람회를 10월 22~24일 아틀라파(ATLAPA)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고 파나마무역관은 전했다.
이처럼 파나마가 해운물류 인프라 구축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까닭은 현재 인프라가 충분치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파나마무역관 보고서를 보면, 현재 파나마는 콜론지역 4곳을 비롯해 총 6곳의 물류 전용 항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 기준으로 컨테이너 물동량 300만TEU를 기록하며 세계 40위에 오른 콜론 컨테이너 터미널을 빼고는 규모가 작고, 물동량도 적다. 특히 물류서비스 질을 높이려면 고급 인력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2-2013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파나마의 교육시스템 수준을 144개국 가운데 112위로 평가했을 정도다. 아리아스 후보가 물류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교육센터 설립을 공약으로 내건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파나마 국제해양대학교 관계자도 현지 언론을 통해 “현재 파나마가 추진하고 있는 환경보존 및 재생에너지산업, 물류 및 해상서비스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기술 및 고급 인력은 필수적인 요소”라며 인력 양성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중남미 물류시장 치열한 경쟁 예고
파나마무역관은 파나마 외에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물류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파나마에겐 달가울 리 없는 전망이다. 해운물류거점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주변국들이 넘어야 할 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파나마 입장에선 과테말라·니카라과·온두라스·콜롬비아가 걸림돌로 꼽힌다. 모두 태평양과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물류 인프라 구축을 추진 중이라고 알려진 국가들이다. 이들이 계획대로 물류 인프라를 갖출 경우 파나마와의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중남미에서 치열한 물류시장 쟁탈전이 펼쳐질 것이지 관심이 쏠린다.
파나마무역관 조사 결과 과테말라는 자동차도로와 철도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육상운하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최소 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온두라스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육상통로’ 건설을 추진한다. 2012년 온두라스 공공사업부 장관은 280㎞ 길이의 육상통로 계획을 발표했다. 콜롬비아 역시 철도를 활용해 드라이운하(Dry Canal)를 건설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니카라과에선 새로운 운하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이 400억 달러를 투자해 파나마운하보다 3배나 긴 운하를 계획하는 것이다.
중남미 물류시장에서 파나마의 경쟁력도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파나마무역관은 2012년 기준 파나마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680만TEU로 2009년(420만TEU)보다 60% 이상 늘어났으며,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운송·통신·보관분야가 24%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물류수행지수가 세계 61위에 불과했고, 국제운송과 세관은 각각 79위와 74위에 머무는 등 낮은 수준이었다고 파나마무역관은 짚었다. 해운물류 인프라 확대에 반대하는 국내외 여론도 문제다. 파나마 내에선 ACP가 계획중인 환적항만에 대해 중복투자란 지적이 일고 있다. 건설 예정지 인근에 파나마의 주요 항만인 발보아(Balboa)항이 자리한 탓이다. 게다가 미국의 스미스소니언연구소 같은 환경단체들은 맹그로브 습지(홍수림) 훼손 등을 이유로 신항만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한편, 파나마무역관은 3월 6일 ‘파나마 경제, 2014년 상승기류를 타다’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파나마가 2년 연속 중남미지역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향후 2년간 중남미 1위를 예약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2011년 글로벌 재정위기 당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 대비 평균 27% 하락했다. 하지만 파나마는 오히려 40%나 상승했다. 미래도 밝아 보인다. 파나마무역관은 “지속적인 해외자본 유입과 경제성장이 이뤄질 것”이라며 “운하확장공사와 콜론지역 다목적 신항구 건설, 지하철 2·3호선 건설 등 정부 주도 인프라 건설이 지속적으로 예상되는바 투자가 기대”된다고 짚었다. 그러나 “미국의 테이퍼링으로 인해 주변 중남미 국가들의 경제악화가 우려되고, 인접 국가들과의 중개무역이 국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파나마까지 그 여파가 작용할 것으로 예상돼 이웃한 국가들의 경제지표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파나마무역관은 조언했다.
글.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