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해양산업 강국 중 하나이다. 현재 조선산업은 양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세계를 호령하고 있고 한진해운, 현대상선을 비롯한 거대 선사 그리고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컨테이너항인 부산항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양강국의 위상과 다르게 선박금융 분야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낮을 뿐더러 인접국가인 중국과 일본에 크게 뒤처져있는 상황이여서 발전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선박금융은 어떠한 것이며 왜 중요한 것일까?
선박금융(Ship Financing)이란? 선박금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금융의 핵심기능에 대한 간단한 이해가 필요하다. 금융의 핵심기능은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선박금융도 핵심기능은 일반 금융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금융과 다른 선박금융만의 특이한 점이 있다. 그 것은 선박금융이 조선·해운산업 밀접한 연관이 있어 나타나는 특징이다. 대양에서 원자재를 실어 나르는 벌크선이나 유조선, LNG선과 같은 대형 선박은 수백억 원부터 수천억 원에 이르는 비용이 드는 고가의 선박이고, 선박의 건조기간은 보통 몇 년씩 걸리며 선박의 상업적 사용가능연수(이는 선박의 수익창출기간으로 볼 수 있다.) 및 수익력 등을 고려한 10년 이상의 장기 금융이 대부분이다. 이는 금융기업들은 막대한 돈을 장기간 빌려주는데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하는 원인인데 그 이유는 선박금융은 선박의 시장에서의 교환가치를 담보로 하는 자산담보대출로 선박의 운용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스(Project Finance)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즉 기간이 길어질 경우 선박의 시장 잔존가치의 큰 변동성과 해운사마다 상이한 지불가능능력에 따른 신용도 때문에 금융기관이 짊어져야할 위험이 상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금융기관들은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박금융은 일반적인 금융과 다른 특수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 것은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 선박을 운용하는 해운사, 해운사에게 물건을 실어달라고 의뢰하는 화주(대량화주의 적하보증은 해운사의 신용도를 높여준다.), 자금을 융자해주는 금융회사 등 선박금융을 구성하는 모든 주체가 하나로 모여 자금의 조달과 운용을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계약은 핵심주체라고 볼 수 있는 해운사와 금융사가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 SPC)을 통해서 체결한다.
이와 같은 선박금융의 자금의 흐름을 정리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해운사는 자사의 돈으로 계약금을 지불하며, 특수목적법인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돈을 조선소에 전달한다. 이 둘의 비율은 통상 2:8정도 된다.
2. 조선소는 이 돈을 바탕으로 선박을 건조하게 되고, 배가 완성되면 해운사에게 배를 인도하면서 ‘선가’를 받는다.
3. 해운사는 이 선박을 운용하면서 이익을 내며 이를 이용하여 금융회사에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게 된다.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선박금융시장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그 것은 선박의 소유자인 선주가 대출받을 때 고려하는 금융기관을 자국기관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의 특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선박금융에서 담보자산인 선박은 전 세계를 항해하고 있고 자금조달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대형 선박거래일 경우에는 세계 여러 국가의 금융기관들이 협조융자(syndicated loan)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기도 한다. 또한 운항수입이 보통 미국달러인 관계로 자금조달에 수반되는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선박금융은 주로 미국달러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는 점은 세계 각 국의 금융기관간의 경쟁을 야기하였다. 현재 세계 선박금융시장 규모는 호황기를 구가하던 2007년도에는 신조선 2600억 달러를 상회하였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급격한 폭으로 감소하였고 이후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다가 다시 유럽의 재정위기로 유럽의 선박금융기관들이 신규거래를 잘 나서지 않은 결과 작년(2012)에는 약 8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였다.
전통적으로 세계 선박금융시장은 사실상 유럽자본이 80%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시장을 선도하였는데 이는 안정된 달러화 자금 조달능력과 글로벌 해운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계 대규모 해운선사 등 양호한 고객기반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럽의 여러 국가 중 주요 국가별 선박금융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독일 독일은 일찍이 선박금융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정부가 1970년대부터 주도하여 선박금융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현재 세계 30위 선박금융은행 중 9개의 은행을 갖고 있으며 이들의 규모는 전 세계의 절반 이상이다.
특히 독일은 독일 선주들이 자국 내 조선소에서 신조선 건조시 선박금융을 100% 독점 제공하며 독일 조선소 발주에 대해 중앙은행 장기저리 융자혜택, 선가의 85~90% 정도의 장기지급 보증서를 LIBOR 금리이하의 우대 금리를 적용하는 이자율로 정부가 지급하는 등 여러 혜택을 주고 있다. 이러한 혜택을 통해 독일의 선박금융은 자국의 조선소와 해운선사들의 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하고 있어 세계 4위의 조선국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며 고부가가치 선박인 로로 페리선, 소형 특수유조선, 크루즈선 등의 특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독일은 선박투자회사제도인 KG펀드(Kommanditgesellschaft)를 이미 50여년 이상 운용하고 있으며 22개 회사가 매년 약 30억 달러를 선박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KG펀드의 자금의 40-50%는 일반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팔아 자금을 모으고, 그 나머지는 은행으로부터 차입하고 있다. 현재 세계 컨테이너선대의 22.2%가 독일 선주가 소유하고 있고, 이 중 대부분은 KG펀드에 따라 건조되었으며, 세계 용선시장에서 거래되는 컨테이너선의 75%가 KG펀드에 따라 건조될 만큼 KG펀드는 이미 세계해운업계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 노르웨이
노르웨이의 선박금융은 1980년대 후반 KS(Kommandittselskap)펀드를 바탕으로 크게 발전 하였다. KS펀드는 1992년 세제개편으로 현재 그 위상이 크게 위축된 상태이나 노르웨이 정부의 오랜 선박금융산업 육성 정책 및 지원의 결과로 강력한 선박금융전문가 풀이 형성 되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독일의 KG펀드와 비교하였을 때 선령규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해운호황기에 선박의 거래량이 급증할 시 KS펀드의 수요 또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3. 그리스 그리스는 전통적인 선주국가로 오랜 기간 다량의 선복보유로 세계 최대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선박매매를 통한 선가차익으로 높은 이익을 추구하여 어느 국가보다도 중고선 금융시장이 활성화되었다. 독일, 노르웨이와 달리 선박펀드는 발달하지 않았으며 전통적인 차입금융이 발달하였다.
아시아 위기 속에서 기회를 엿보다
그런데 유럽중심의 선박금융시장에서 아시아의 가능성이 대두되었는데 가장 유력한 국가로 싱가포르가 떠올랐다. 특히 2006년 MFI(Maritime Finance Incentive)의 도입으로 선박금융에 대한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선박펀드를 위협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싱가포르의 괄목할 만한 성장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 선박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로 인한 규제의 강화로 인해 유럽의 은행들이 최근 신규 선박금융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틈을 타 아시아 국가들이 선박금융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의 행보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중국은 세계 선박금융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은행들의 거대한 달러 보유고를 바탕으로 확장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은 2009년 이후 자국의 조선 및 해운산업 지원과 육성을 위해 Bank of China, 중국 수출입은행, ICBC(Industrial and Commercial Bank of China)등의 은행과 중국수출신용보험공사(SINOSURE)을 통해 선박금융을 전 방위에서 지원하고 있다. 또한 텐진을 중심으로 200억 위안 규모의 조선산업 투자펀드와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50억 위안 규모의 해운산업펀드와 같은 펀드 투자도 활성화 되고 있는 중이다. 비록 중국이 현재 정책적 수단으로서의 금융위주여서 한계는 있으나 새로운 글로벌 선박금융 주도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정확하게 집계되고 있지는 않으나 약 20%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대부분의 해운컨설팅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움직임 또한 심상치 않은데 일본은 Sumitomo Mitsui FG, 미즈호, 미쓰비시 UFJ등 상사금융이 발달하였고 일본국제협력은행(JBIC, Japan Bank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 NEXI 등 수출금융기관(ECA)도 선박금융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2011년 일본선박투자촉진회사 설립 계획을 발표하는 등 선박금융 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선박금융 지금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
현재 대한민국의 선박금융은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은 조선 세계 1위의 강국이지만 세계 선박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도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데 국내 금융기관의 미 달러화 조달 한계성, 선박금융조달이 해운선사나 화주의 신용공여에 의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국내 해운선사 및 화주의 발주규모가 글로벌 기준으로 작은 규모인 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정부에서는 대선공약으로 부산에 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해 집중효과를 통한 선박금융 육성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관계자들은 선박금융공사 설립시 세계무역기구의 분쟁가능성을 우려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현재 백지화된 상태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정책이 표류하는 동안 대한민국의 해운사들이 대거 도산하고 있다. 최근 업계 3위인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1,2위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유동성확보를 위해 자사 선박까지 돈이 되는 모든 것은 처분 중에 있다.
이처럼 우리가 굼벵이 걸음을 하고 있는데 반해, 외국은 현재 어려운 해운시장에서 자국 해운사를 지원하기 위한 선박금융정책을 신속하게 실시하고 있다. 중국은 선박금융 강국을 위해 힘찬 걸음을 하고 있다. 중국은행은 자국 선사인 COSCO에 108억 달러의 신용을 제공했으며 중국수출입은행도 5년 간 96억 달러의 신용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일본은 국부펀드와 1% 이자율의 회사채 발행, 지급보증, 유동성지원, 자국선주 지원 등의 금융지원을 내놓았다.
해운·조선·선박금융은 서로 삼각관계로 얽혀있다. 태생적으로 어느 한쪽이 부실해지면 다른 쪽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 산업간 불균형이 너무나 심한 편이다. 이 불균형 때문에 해운산업이 흔들리고 있으며 조선산업 또한 어려움을 겪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그렇기에 선박금융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 우선 해운·조선·선박금융에 대한 전반적이고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전문 인력의 확보의 육성을 위한 체계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선박금융을 총괄하여 진두지휘할 전문 선박금융기관의 설립으로 각종 규제 완화 및 자국 선사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선박금융이 선박의 시장에서의 교환가치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해운사들 또한 신용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영웅은 난세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이치이다. 어려운 해운시황에서 선박금융의 발전을 위한 민관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서 대한민국 해운산업이 제 2의 도약기를 맞이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