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당 일어날 일도 항상 일어나지는 않는 걸 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리만 브라더스가 5년 전 파산했을 당시로 돌아가 보자. 은행들은 서로 간 거래를 중단했고 신용장은 악몽이 돼버렸으며 금융시스템이 거의 붕괴될 뻔 했었다. 해운 분석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조선 수주 현황을 분석하고 선박들이 인도되지 못할 걸로 결론을 내렸다.
이 문제는 대처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당시 수주량은 자그마치 5억8천4백만 톤. 이는 총 선박량의 47%에 해당됐고 계약금액으로는 5천4백20억 불이었다. 첫 번째 문제는 은행들의 선박 대출 자산이 너무 커서 추가로 2천~3천억 불을 고려해볼 여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해운 호황기의 중추역할을 했던 벌크선이 급락을 맞게 된 점. 케이프사이즈 운임은 ‘08년 6월 하루에 20만 불까지 올랐다가 11월에 이르러서는 4천 불 이하로 떨어졌다.
아울러 5년 된 케이프사이즈선 가격은 7월 1억5천5백만 불을 찍었다가 연말에 4천5백만 불로 폭락했다. 마침내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이하면서 해운 변호사들은 아예 계약 파기에 온 힘을 쏟게 된다. 당시 분위기는 분명히 수주량이 모두 증발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차트를 보면 ‘08년 말 수주현황이 굉장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예정된 인도량이 ’09년 1억7천9백만 톤, ‘10년 1억9천7백만 톤, ’11년이 1억5천5백만 톤이었다. 이는 1990년 수준의 10배로 생산량이 늘어난 수치였고 전례 없는 최고의 조선 호황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주량은 인도가 이루어졌다.
차트 속 막대그래프에서 실제 선박 인도량을 확인할 수 있다. ‘09년과 ’12년 사이에 인도된 선박 총 톤수는 5억8천7백만 톤이었다. 이는 ‘08년 말 기준 수주량인 5억8천4백만 톤을 초과한 수치였다. 물론 도중에 상당수의 취소 사례도 있었고 반면 ’10년에는 엄청난 양의 발주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조선소들은 자신들의 일을 수행해냈고 조선소가 일단 일을 시작하면 정말로 선박을 인도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중량톤(dwt)으로 ‘11년 실제 인도된 선박량은 1억6천4백만 톤에 달했는데 원래 예정됐던 최고치보다는 약 20% 가량 낮았다. 그러나 조선소들은 상당히 잘 버텨냈고 작년에는 1억5천4백만 톤이나 인도했다. 그리고 올해는 1억2천3백만 톤, 내년에는 1억 톤 정도를 인도할 수 있을 것으로 현재 예상된다.
선박 공사량을 더 잘 나타내는 CGT로 측정했을 때 올해 세계 조선소들은 5년 전에 그 믿기 어려웠던 절정 수준과 비교해 약 80%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조선소가 사업 다각화에 성공한 데 그 이유가 있다. 해양플랜트와 가스 및 컨테이너선 분야 모두 벌크선 투자자들의 열정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모두 제 역할을 해냈다. 바로 그것이다.
수주물량은 예정대로 인도가 됐고 세계 선대는 ‘08년 말 보다 40%나 더 커졌다. 그리고 그 늘어난 선박들은 현재 여유롭게 화물을 운반하고 있다. 은행들 또한 간신히 고비를 넘겨왔는데 이런 모든 현상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벌크선사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분명한건 위의 일어난 일이 어떤 것도 예기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1억6천4백만 톤의 선박량이 다시 빠른 속도로 인도되는 모습을 보기는 기대하기 힘들 듯하다.
(Clark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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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T (표준화물선 환산톤수 : Compensated Gross Tonnage)
CGT는 선박의 가공공수, 설비능력 및 선가 등 GT에서는 나타낼 수 없었던 것을 상대적인 지수표시인 CGT계수를 사용하여 구한 것이다. 기준선인 1.5만DWT(1만GT) 일반화물선의 1GT당 건조에 소요되는 공사량(가공공수)을1.0으로 하여 각 선종 및 선형과의 상대적 지수로서 CGT 계수를 설정하고 선박의 GT에 이를 곱하여 CGT를 구한 것으로 선박의 공사량을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