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 글로벌 해운기업 머스크 라인(Maersk Line Ltd)의 스테판 카멜(Stephen M. Carmel) 수석부사장은 컨테이너 선사 입장에선 북극항로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고 미국 해군 기관지 <프로시딩 매거진>(Proceedings Magazine) 7월호가 보도했다. 프로시딩 매거진에 따르면, 세계 해운 전문가들은 북극항로가 기존 항로보다 짧은 해상운송루트 개발을 서두르는 화주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제한된 운항기간을 포함해 흘수와 최대 선폭 제한 등 북극항로를 통한 컨테이너 수송 상용화의 걸림돌이 적지 않다.
중국 국영 해운기업 중국원양운수집단(코스코 그룹) 계열사인 코스코 해운(Cosco Shipping Co.)의 화물선 융성(永盛)호가 지난 8월 8일 역사적인 항해에 나섰다. 중국 랴오닝성 다롄항을 출발한 융성호는 중국 상선 가운데 처음으로 북극항로를 통과해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화물을 수송할 예정이다. 예정대로 9월 11일 로테르담항에 도착한다면 수에즈운하와 지중해를 지나야 하는 기존 항로보다 15일이나 운항일이 줄어든다. 코스코 그룹은 융성호의 북극항로 개척이 연료 사용은 물론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까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주목받는 이유북극항로는 지구촌 전체를 위협하는 환경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북극 바다를 뒤덮고 있는 얼음이 녹으면서 쇄빙선뿐 아니라 일반 선박이 다닐 수 있는 항로가 생겼다. 환경위기 덕분(?)에 북극항로 상용화의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손꼽히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도 있다.
세계 해운업계가 북극항로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북태평양-북대서양 간 선박의 항해거리가 크게 단축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부산항을 출발한 화물선은 유럽 최대 항구인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남방(인도양)항로를 이용해야 한다. 동남아시아, 인도양, 수에즈운하, 지중해 등을 거쳐야 하는 이 항로의 운항거리는 2만100㎞, 운항일수는 30일에 이른다. 그러나 부산항에서 북태평양, 베링해협, 북극해를 거치는 북극항로(북동항로)의 운항거리는 남방항로보다 37%나 짧은 약 1만2700㎞. 운항일수도 20일로 10일이나 준다.
게다가 북극은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는 석유 900억 배럴과 천연가스 1669조㎥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전세계 석유와 천연가스의 25%에 해당하는 양이다. 니켈, 철광석, 우라늄, 아연, 구리 등 광물도 풍부하다. 특히 북극지역엔 ‘불타는 얼음’(Burning Ice)으로 불리는 가스 하이드레이트(Gas Hydrate)가 약 400GtC(giga ton CO2)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가스와 물이 뒤섞여 얼어붙은 가스 하이드레이트 그 자체는 강력한 온실가스이기도 하다. 북극해 아래 갇혀 있던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녹으면서 자연 방출될 경우 지구온난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연소될 때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적은 덕분에 미래 에너지 대접도 받고 있다.
개발되지 않은 에너지와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은 물동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다. 자원 개발과 개발된 자원을 수송하는 과정에서 해상 물동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북극해 연안국인 미국·러시아·캐나다·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아이슬란드·덴마크와 더불어 해운 강국으로 꼽히는 한국, 중국, 일본, 영국, 독일, 네덜란드, 싱가포르 등도 북극항로 개척과 자원 개발을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쯤 활짝 열릴까
지난해 8월 발행된 <계간 해양수산>을 통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물류연구본부의 송주미 전문연구원이 발표한 논문 ‘북극항로 이용현황과 러시아의 상업화 정책’을 보면, 북극항로는 다시 세 항로로 나뉜다. 북극위원회는 2009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극항로를 노르웨이의 노스 케이프(North Cape)에서 북부 유라시아와 시베리아를 잇는 북동항로(NEP), 북아메리카와 캐나다 북극군도를 연결하는 북서항로(NWP), 북동항로의 일부이며 베링해협부터 카라관문(Kara Gate)에 이르는 NSR(Northern Sea Route)로 구분했다.
세 항로 가운데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북동항로. 스웨덴의 지리학자이자 북극탐험가인 아돌프 에리크 노르덴시욀드(Adolf Erik Nordenskiold) 남작이 1878년 베가호란 배를 타고 처음 개척한 북동항로는 일찍부터 이용됐다. 현재 코스코 융성호가 항해중이며, 현대글로비스 스테나 폴라리스도 이 항로를 이용할 예정이다. 반면 북서항로는 그 동안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NSR은 러시아가 법률로 정의한 구간으로 러시아 연안에 국한된다.
1933년 13만t이던 북극항로 물동량은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북극해의 천연자원 탐사에 관심을 보인 이후 꾸준히 늘어나 1987년 658만t으로 최대 기록을 세웠다. 1991년 옛 소련 해체와 함께 북극항로 물동량도 빠르게 줄었다. 하지만 북극해의 얼음이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러시아 정부가 북극항로 상업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북극항로 이용실적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적 극지·빙하 연구기관으로 손꼽히는 미국 국립설빙자료센터(NSIDC)는 지난해 10월 16일(현지시각) 현재 북극해 얼음 면적은 342만㎢라고 밝혔다. 위성관측 방법으로 북극해 면적을 기록하기 시작한 1979년 이후 최저치를 보인 것이다. 이전까지 최저기록이었던 2007년 9월의 417만㎢를 훌쩍 뛰어넘는 신기록이다. 2050년을 전후해 북극해의 얼음이 모두 녹아버릴 것이라 경고했던 NSIDC는 시기가 더 당겨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극항로가 활짝 열리는 날이 더 앞당겨졌다는 의미다. 러시아 정부가 2011년 6월 발표한 탄력적 쇄빙선 이용료 적용 정책도 북극항로 상용화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극항로 수혜주’까지
북태평양과 북대서양을 잇는 바다길 거리를 크게 단축시키면서 물동량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자 자연스레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에선 ‘북극항로 테마주’까지 거론될 정도다. 지난 8월 중국 코스코 해운이 융성호를 통해 북극항로 개척에 나선데 이어 한국 현대글로비스도 이달 중순 북극항로를 거쳐 화물을 수송하는 시범운항 계획을 발표해 기대감을 부채질하고 있는 형편이다.
북극해를 통과해 로테르담항으로 항해중인 코스코 융성호는 1만9461톤(DWT)급 다목적 컨테이너선이다. 이 배는 북극항로를 거쳐 유럽과 북미로 이어지는 항로 개척 임무를 띠고 있다. 코스코는 융성호의 시범운항이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게 국내외 언론의 분석이다. 북극항로가 활성화되면 중국과 유럽 및 북미까지의 해상운송거리가 크게 줄어든다. 세계 최대 수출국인 중국 입장에선 수출품의 운송비를 아끼고,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도 있다.
한국 국적 선사 가운데는 현대글로비스가 처음으로 북극항로를 통해 화물 수송에 나선다. 현대글로비스는 석유화학회사인 여천NCC가 러시아 민영 가스회사 노바텍으로부터 수입하는 나프타 3만7000t을 오는 15일 우스트루가항에서 선적한 뒤, 북극해를 거쳐 국내로 들여오기로 했다고 지난달 말 밝혔다. 현대글로비스가 이번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투입하는 선박은 스웨덴 스테나 해운에서 용선한 ‘스테나 폴라리스’. 길이 183m, 폭 40m에 최고 속력 15.5노트의 스테나 폴라리스는 6만5000t급 석유 제품선으로, 10월 중순께 전남 광양항 사포 부두에 도착할 예정이다. 스테나 폴라리스의 운항거리는 북극해 구간 4200㎞를 포함해 총 1만5500㎞이며, 운항시간은 35일로 예정돼 있다.
중국 코스코에 이어 한국 현대글로비스까지 북극항로 시범운항 계획을 발표하자 북극항로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는 분위기다. 한국·중국·일본처럼 유럽이나 북미 지역으로 향하는 물동량이 많은 나라들로선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 북극항로 테마주가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극항로 상용화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아직 경제성 확보 어렵다
북극항로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앞서 소개한 스테판 카멜 머스크 라인 수석부사장의 경고가 그렇다. 그가 북극항로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이유는 북극항로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거두기 쉽지 않은 환경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프로시딩 매거진은 벌크운송보다 컨테이너운송에서 불확실한 요인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북극지역 에너지 개발이 확대되면서 아시아지역으로의 벌크화물 물동량은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중국의 ‘말라카 해협’ 위험을 줄이는 데 북극항로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극항로를 통한 컨테이너 수송은 제한된 운항기간과 기후변화, 흘수와 선폭의 제한, 세계 무역패턴의 변화 등 몇 가지 제약이 따른다.
먼저 컨테이너 운송은 연간 3~4개월에 불과한 운항기간과 기후 변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컨테이너 운송 서비스의 핵심 요건인 스케줄 관리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현재 컨테이너 화물의 절반 이상은 중간재로, 적기 공급 생산 방식인 JIT(Just-In-Time) 재고관리시스템이 적용되는 생산 공정에 쓰인다. 일관성, 신뢰성, 선박 스케줄의 정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제한된 운항기간은 북극항로를 포함한 컨테이너 운송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선사들에게 항로 전반에 대한 경제성 확보의 걸림돌로 꼽힌다.
흘수와 선폭 제한은 기존 항로에선 가능한 규모의 경제를 어렵게 한다. 현재 북극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의 흘수는 12.5m로 제한돼 있으며, 운항 가능한 최대 선폭은 30m다. 이를 감안하면 최대 2500TEU급 컨테이너선밖에 투입할 수 없다. 그러나 기존 아시아-유럽 항로를 운항중인 컨테이너선은 주로 6000~8000TEU급이다. 머스크는 선폭 59m에 적재능력은 1만8000TEU인 ‘트리플-E급’ 컨테이너선 아시아-유럽 항로에 꾸준히 투입할 예정이다. 머스크가 2년 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한 트리플-E급 20척 가운데 1호 건조선인 ‘맥키니 몰러호’는 부산-유럽 정기항로에 투입돼 지난 7월 15일 첫 기항지인 부산항 신항에 입항한 바 있다.
향후 30~40년 뒤 세계 무역패턴의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의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생산시설이 중국보다 생산원가가 낮은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전되는 추세다. 앞으론 북극항로의 가장 큰 매력인 운송거리 단축이 별 볼 일 없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이 추진했던 150억 유로 규모의 스톡만(Shtokman) 가스전 프로젝트가 치솟는 비용과 미국의 저렴한 셰일가스 개발, 유럽의 가스 수요 감소 등에 따라 무산된 사례처럼 북극지역 에너지 개발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도 무시해선 안 된다.
실익부터 철저히 따져야
북극항로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걱정이 공존하는 가운데 한국에선 기대감이 커지고 상황이다. 특히 국내 언론들은 최근 현대글로비스의 북극항로 시범운항 소식과 함께 북극항로 시대가 개막됐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북극항로가 국내 해양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부산항, 울산항, 동해항 등이 북극항로의 모항으로 지정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프로시딩 매거진이 전한 스테판 카멜의 경고처럼 경제성을 따져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연합뉴스>가 2일 보도한 울산 기업들의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합뉴스는 이날 “울산항만공사가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북극항로 개발에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정작 수혜 대상인 울산지역 기업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고 보도했다. 북극항로에 대한 안전성과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부담을 짊어지지 않겠다는 게 울산지역 기업들의 공통적 인식이란 내용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울산항만공사는 ‘울산항 북극해항로 활성화를 위한 협의체’를 꾸려서 지난 8월 7일 첫 회의를 열었다. 협의체에는 울산항만공사를 비롯해 울산시, 울산지방해양항만청 등 기관뿐 아니라 울산발전연구원, 영산대 북극물류연구소 등의 연구기관, 지역 내 기업인 SK에너지, 에쓰오일, 현대중공업, 유코카캐리어스 등이 참여했다. 그런데 울산항을 북극항로 거점항으로 조성하려는 울산항만공사의 의도와 달리 기업들은 사고 위험이나 운송비 증가 등을 이유로 “상황을 관망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글.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