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6일부터 10일까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제 28차 국제항만협회(IAPH) 세계 총회가 열렸다. IAPH는 1955년 미국에서 설립되어 현재 86개국 340개 회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UN산하 6개 기관의 공식 자문단체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대 항만·관리 관계자 국제기구이다. IAPH는 급변하는 세계 해운환경에 회원들이 대처할 수 있도록 매 2년마다 총회를 열고 있으며 2011년에는 대한민국 부산에서 총회가 개최되었다. 여러 항만·해운 분야에서 뛰어난 혜안을 발휘한 제안과 정책들이 이번 총회를 빛냈지만 주된 화두는 최근 전 세계적 이슈인 ‘그린포트’와 관련된 정책과 제안들이였다.
특히 2013 IAPH 총회에서는 그린포트로 나가기 위한 세계 항만들의 노력들이 눈여겨 볼만 했다. 세계 유수 항만들이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그린포트 프로젝트를 발표했으며 일본의 하카다 항만은 자연재해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친환경적으로 항만을 계속해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 금상을 수상하였다. 그 뒤를 이어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항만의 지속가능기금이 은상을 스페인의 발렌시아 항만과 벨기에의 앤트워프 항만이 동상을 수상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따라 LNG 청정 연료 선박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항만 관계자들의 높아진 관심 때문에 ‘LNG 연료유 선박의 출현이 항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세션이 열려 LNG 청정 연료 일반 화물선 및 가스선의 현황과 터미널 운영사의 발표도 이어졌다.
이번 2013 IAPH 총회가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제는 항만이 더 이상 단순한 양적성장 만으로 세계적인 항만으로 거듭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항만이라 하면 부산항과 인천항을 들 수 있다.
특히 부산항은 컨테이너 처리량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세계 5위(2012)에 랭크되어 있다. 부산항은 최근 10년 동안 물동량 기준으로 세계 TOP 5 항만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이는 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로 시작된 해운경기 침체와 중국항만의 거센 추격을 이겨낸 굉장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천항은 무섭게 세계 물동량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글로벌 포트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항만들도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서 그린포트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부산항은 IAPH 총회에 앞서 지난 3월 쉬퍼스 저널과 CSR 투데이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회 국제 클린포트 그린경제 컨퍼런스에 참여하여 그린포트 부산항을 위한 전략들로 전기식 야드 크레인의 개조와 일부 전기식 또는 LNG식 이송트럭의 도입, 배후단지 내 태양광 설비 구축 등을 제시하였다. 또한 인천항은 4월에 한국가스공사와 LNG를 선박용 연료로 사용하는 ‘에코누리’호에 연료를 공급하는 ‘선박용 LNG 공급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분진방지 하역장비인 Bulk Hopper System(일명 에코호퍼)을 도입해 날림먼지를 기존 장비 대비 80%까지 저감시켰으며 높은 일사량과 항만의 유휴 창고지붕을 활용한 10㎿급 태양광 발전소 건립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인천항의 그린 포트를 향한 노력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일 대한민국 녹색경영대상을 수상하였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항만들도 그린포트라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소기의 성과를 이룩했지만 아직까지는 미흡한 점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점은 그린포트 구축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의 부재이다. 정책과 총괄적인 관리 시스템의 부재는 각각의 그린포트 전략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로 인해 현재 선박에 대한 국제 환경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항만은 자체적인 환경기준조차도 없는 실정이다. 법적근거나 기준이 명확히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그린포트 구축 계획은 여타 세계 항만들과 비교해봤을 때 그다지 경쟁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 세계 각국의 항만들은 국제 환경규제의 강화에 맞춰 그린포트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워서 실행하고 있다. 현재 그린포트 전략을 세계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항만 중 한 곳이 로스엔젤레스의 롱비치 항이다. 롱비치 항은 2005년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제정한 선박배출 가스 규제(MARPOL)가 발효되면서 가장 먼저 그린 포트 정책을 채택하였다. 롱비치 항만에서는 근무자들의 보건상태 향상, 녹색성장, 항만 오염물질 감축, 이해관계자 네트워크, 고용창출 및 지역경제기여 등을 6대 주안점으로 삼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클린 에어 액션 플랜, 클린 트럭 프로그램, 그린쉽 인센티브 프로그램 등 항만 당국의 직접적인 규제, 입항하는 선사들의 자발적인 참여 유도, 인센티브 제공이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항만 터미널에서 발생하는 유해 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항만 주변 수질 개선 그리고 항만 근무자들의 보건상태 향상을 통해 항만 전체에 걸쳐 지속가능한 환경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일회성이나 단기적으로 실행되고 그친 것이 아니라 매년 연례 보고서를 통해 성과와 미비점을 확인하고 개선방법을 다음 해에 적용함으로써 그린포트 나아가 제로 배출 항구로 발돋움 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매년 항만의 규제와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선사나 기업들을 시상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책이 잘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올해에는 5월 그린쉽 인센티브 우수 이행 및 청소선을 배치하여 항만 공기 질 향상에 일조한 20개 선사에 표창을 수여하였으며 7월에는 클린에어 액션 플랜 어워드를 통해서 5개의 우수선사를 선정하였다.
롱비치 항은 그들만의 특별한 정책을 통해서 그린 포트를 향해서 세계 어느 항만보다도 빠르게 향해가고 있다. 이것은 항만 차원을 넘어서 정부 또한 그린포트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통해서 장기적인 전략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세부적인 프로그램들은 항만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은 롱비치 항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보이는 그린포트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점이 우리나라 항만의 그린포트 전략과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글로벌 리딩 포트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항만의 경영에서 환경이 부차적인 액세서리로 간주되는 시대의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제는 환경은 필수적으로 고려해야하는 요소이다.
현재 해운시장은 고유가와 경기침체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다. 이를 타개하고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 세계 해운시장이 선택한 답지는 ‘청정항만’이며 이에 따라 세계 해운시장은 다시 개편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항만이 세계 속에서 우뚝 솟기 위해서는 진짜 ‘그린포트’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