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성장률이 둔화됨에 따라 세계 해운 물동량 증가율 또한 감소했다. 2014년 3.4%였던 세계 경제 성장률이 다음 해인 2015년 3.1%로 하락하자 세계 해운 물동량은 각각 3.3%에서 2.1%로 더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나 선복량은 오히려 증가하며 공급 과잉 상태가 지속,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해운시장의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지난 8월 31일,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파산 절차를 밟게 되었다. 세계 5위 해운 국가이자 한국 10대 수출 품목 중 6위에 오를 만큼 우리나라 근간 산업인 해운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있었으나 그 대응이 소극적이고 실효성이 없었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같은 상황에 있었던 조선업에 대한 지원과 비교하면 해운업 구조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는 평가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업 4.2조 원, 해운업 1.9조 원
실제로 정부는 2015년 10월 ‘제1차 산업 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조선, 해운을 비롯한 5개 분야를 취약업종으로 규정하고 이들 분야에 대한 구조조정 방침을 결정했다. 그러나 조선업에 대해서는 유상증자와 출자전환 등의 자본 확충 형태로 추진,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을 한 반면 해운업 금융지원은 시장안정 유동화증권(P-CBO)을 통한 시장차입금 차원과 운영자금 기한연장 등의 단기운영자금 성격을 띄며 온도차를 보였다.
2015년 10월,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지원 방침을 살펴보면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유상증자 1조원, 신규대출 1.6조원 등 2.6조원을, 수출입은행은 1.6조원의 신규대출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신규대출 중 일부는 추후 출자전환을 실시 할 계획이라고 나와 있다.
반면 정부의 현대상선 1조, 한진해운 0.8조의 총 1.9조원 규모의 지원은 시장안정 유동화증권을 통해 이루어진 단기 유동성 지원이며 정부가 지원한 운영자금의 규모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합쳐 총 0.8조원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선과 해운에 대한 정부의 차별적 지원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실질적 국영기업 대우조선해양, 순수 민간기업 한진해운, 현대상선
이렇게 정부의 조선과 해운에 대한 지원정책이 다르게 추진 된 이유는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2015년 12월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주식 소유현황을 살펴보면, 산업은행이 49.7%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금융위원회가 8.5%의 지분을 소유하는 등 실질적으로 국영기업이라고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 실패 시 지분 손실 등 국책은행이 크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각각 대한항공이 33.23%, 현대엘리베이터가 17.96%의 지분을 보유, 최대 주주인 순수 민간기업이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의 경영정상화에 대한 관심은 해운업에 비해 조선업에 쏠릴 수밖에 없는 지배 구조였으며, 실제로 정부는 2015년 말 해운에 대한 구조조정 원칙을 ‘개별회사의 유동성 문제는 원칙적으로 자체적인 노력으로 해소’하는 것으로 정하고 이를 기업에 요구했다. 결국 해운업과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향의 차이는 지원수단을 갖고 있는 국책은행이 자신이 떠안아야 할 리스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의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국책은행의 리스크 관리 방안에 대해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민간기업 지원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 산업적 측면 배재하고 리스크 감당 능력에 집중
게다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경영정상화 과정에서도 국책은행이 산업 정책적 측면보다는 은행 자체의 추가 부담 리스크를 중심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추가적으로 들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현대상선은 2016년 현대증권 매각을 통해 1.2조원, 전용선 매각을 통해 0.2조원의 총 1.5조원을 마련하여 부족자금을 모두 해결하는 등 자율협약 조건을 모두 이행함에 따라 채권단이 조건부 경영정상화 방안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약 7,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하며 기존의 대주주 지분율을 0.5%미만으로 줄이고 채권단의 지분율을 40%로 늘렸으며 이중 산업은행은 20.54%의 지분을 차지하며 현대상선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반면 한진해운은 자율협약조건을 이행하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의 한진해운을 떠맡는 것은 한진해운의 기존 채무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복잡한 리스크를 산업은행이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부담으로 작용하여 금융당국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금융당국이 산업의 경제적 기여도, 청산 시 국내외 경제의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기 보다는 국책은행이 한진해운 리스크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에 집중해 지원책을 마련한 결과가 세계 7위 해운사의 파산이라는 비극을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의 산업에 대한 국가적 이해 필요
해운시장의 위기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 된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해운사들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수합병 등 자구책을 마련, 실시하고 있으며 덴마크, 독일 등 주요 해운국 정부 또한 자국 해운기업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덴마크는 2009년 세계 1위 해운사인 머스크에 수출신용기관인 EKF(Eksport Kredit Fonden)를 통해 선박건조 관련 비용 523백만 달러를 대출해주었으며 1, 2차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독일 정부와 함부르크 시정부 등이 연계하여 세계 5위 해운사인 하팍로이드에 총 30억 달러가 넘는 금융지원을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선사 간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는 방향의 구조조정 또한 진행했다. 프랑스 정부는 2009년부터 5년 간 채권단을 중심으로 총 52.7억불의 정책자금을 투입했으며, 프랑스 국부펀드를 통해 세계 3위 해운사인 CMA-CGM에 1.5억불을 지원했다. 중국 또한 국영은행을 통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COSCO와 CSCL에 각각 33.2억불, 31.1억불을 만기 최대 13년의 장기대출로 지원했으며 국가 차원의 국영기업 개혁의 일환으로 두 선사를 합병하는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렇듯 주요 해운국들의 자국 해운기업에 대한 정책은 금융지원과 구조조정 방향 제시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정책의 바탕에는 해운의 국가적인 역할에 대한 정부의 인식 및 이해가 깔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운, 국가기간산업인 만큼 단기적 지원보다 장기적 지원과 정책 수립 필요
사실 한진해운 사태의 신호는 2011년부터 있었다. 한진해운의 이자보상비율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금융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는 잠재적 부실기업상태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국책은행은 최근 수년간 이러한 부실기업의 워크아웃 개시시점을 지체시키고 한진해운에 대해서는 단순한 유동성 지원에만 그쳐 오히려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며 기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이번 해운업 구조조정에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는 이렇듯 국책은행이 산업 정책적 관점에서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함에 있다. 하지만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업을 놓아서는 안 된다. 위기의 해운업이 자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는 인수합병 등 글로벌 해운 산업의 추세를 반영하여 추가적인 지원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