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세계 주요 항만의 컨테이너 물동량 순위가 크게 바뀌었다. 상하이항을 필두로 중국의 항만들이 급부상한 반면 대만의 카오슝항처럼 세계 3위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하다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경우도 있다.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던 일본의 주요 항만들도 해가 갈수록 뒤쳐지는 형편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요코하마항도 컨테이너 물동량 기준 2000년 세계 20위 안에 들었지만, 2010년대 들어 30위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요코하마항은 ‘미래항구21’(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를 통해 21세기형 항만으로 탈바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59년 개항한 일본 5대 항만
요코하마는 일본 수도 도쿄 근처에 있는 항구도시다. 도쿄 도심에서 요코하마 도심까지 거리는 약 30㎞, 도쿄에서 전철로 40분이면 요코하마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다. 이를테면 도쿄의 위성도시인 셈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천에 해당될까. 그러나 2012년 기준 요코하마의 인구는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354만명)보다 많은 370만명에 이른다. 반면 컨테이너 물동량은 1702만TEU를 처리한 부산항에 비할 바가 못 되는 305만2000TEU에 불과하다. 도쿄항, 치바항과 더불어 도쿄만에 자리한 요코하마항은 수심, 조류, 풍향, 풍력 등의 측면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항만으로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의 대표적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요코하마항이 개항한 것은 1859년 6월(양력 7월)이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우라가(浦賀)에 들어와 쇄국정책을 펴던 에도막부를 압박했고, 이듬해 요코하마에서 미일화친조약을 맺으면서 빗장을 풀게 했다. 1859년 일본은 미국,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개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고 요코하마를 개항했다. 100여 세대가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으며 살던 요코하마엔 부두가 건설되고 외국인 거류지도 생겼다. 무역항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외국 선원 등이 늘어나자 1860년 요코하마에 호텔이 들어섰고, 1861년엔 일본 최초의 활자 인쇄 신문이 창간됐다. 1866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우유가 판매된 곳도 요코하마였다. 1870년대 들어 근대 항만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철도가 생겼다. 1870년 요코하마와 도쿄를 잇는 철도공사가 첫 삽을 떴고, 1872년 시나가와 및 신바시까지 철도가 개통됐다.
이처럼 요코하마는 에도시대 말기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항구도시로 번창했다. 개항 150년을 훌쩍 넘긴 요코하마는 오늘날 도쿄·나고야·오사카·고베와 함께 일본 5대 항만으로 꼽힌다. 게다가 1910년대 초부터 1955년, 1959년까지 3차례 요코하마 연안 수역을 매립해 넓은 공장부지가 조성되면서, 게이힌 공업지대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무역도시뿐 아니라 공업도시 구실도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요코하마는 시련도 여러 번 겪었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간토)대지진은 일본을 대표하는 항만으로 성장하던 요코하마를 폐허로 만들었다. 가옥 6만호가 파괴되고 사상자도 2만 여명에 달했다. 1929년 무역 중심지로서 옛 모습을 거의 되찾은 요코하마는 게이힌 공업지대 조성에 따라 중화학공업도시로 발전하는 듯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다시 한 번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미국의 폭격기가 요코하마를 초토화시켰다. 특히 1945년 5월 29일 미국의 폭격은 요코하마 시가지의 42%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7만9000호가 넘는 가옥이 피해를 입었고, 행방불명자를 포함해 1만4157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더구나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함에 따라 요코하마 시가지의 27%와 항만시설의 90%가 연합군에 몰수됐다. 이에 폭격으로 파괴된 항만시설을 비롯한 요코하마의 인프라 복구 작업은 다른 일본 도시에 견줘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요코하마가 다시 일본의 주요 무역항으로 복구되기 시작한 것은 1951년 대일강화조약 조인 이후부터다.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
1859년 개항한 이래 무역항으로 성장한 요코하마는 관동대지진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현재 요코하마는 수도 도쿄에 버금가는 일본 제2의 도시란 평가를 받고 있다. 1960년대부터 기획된 ‘미나토미라이21’이란 재개발 프로젝트 덕분이다. 미나토미라이21이란 우리말로 ‘미래(미라이) 항구(미나토)21’이란 뜻이다. 미나토미라이21 웹사이트(www.minatomirai21.com)를 보면, 미나토미라이21은 도쿄만에 인접한 요코하마 도심지를 분단하는 자리에 있던 조선소 터와 새로 매립한 부지에 조성된 186ha 규모의 미래도시다. 미나토미라이21이란 이름은 요코하마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를 거쳐 결정됐다. 항구도시 요코하마의 “미래를 향한 꿈과 소원이 담겨”져 있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미나토미라이21은 요코하마의 자립성 강화, 항만기능의 질적인 전환, 수도권 업무기능 분담 등 세 가지 목적으로 추진됐다. 이 프로젝트는 먼저 양분된 간나이 및 이세사키쵸지구와 요코하마역 주변을 일체화시켜 업무·상업·문화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요코하마의 자립성을 높이기 위해 1964년께 처음 구상됐다. 공원과 녹지를 정비해 요코하마 시민의 휴식공간인 워터프런트를 확보하고, 업무·상업·국제교류 기능을 확대함으로써 수도 도쿄의 기능을 분담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려는 뜻도 담겼다. 미나토미라이21은 1965년 2월 요코하마시가 6대사업 가운데 하나로 ‘도심부 강화사업’을 발표한 데 이어 1978년 11월 발족된 요코하마 도심임해부 종합정비계획 조사위원회가 1979년 12월 기본구상을 보고하면서 가닥이 잡혔다.
본 프로젝트는 1983년 11월 착공됐다. 1984년 7월엔 도심의 업무·상업·문화 기능을 모으고 적절히 배치하기 위한 제3섹터로 (주)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이 설립됐다. 이후 미래 항구도시 조성의 중심축 구실을 해온 (주)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의 업무는 요코하마 개항 150돌인 2009년 일반 사단법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로 넘겨졌다. 일반 사단법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은 2009년 4월부터 도시 정비 조정, 환경대책, 문화·프로모션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미나토미라이21 지역은 ‘요코하마의 얼굴’ 대접을 받는다. 새로 지어진 미술관, 쇼핑몰, 오피스빌딩, 고급호텔 등이 미래도시 같은 느낌을 줄뿐더러 과거 ‘태평양의 백조’로 불리던 범선 니혼(닛폰)마루와 개항 당시 모습을 간직한 아카렌가 창고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요코하마가 항만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임을 알려주는 상징적 존재가 미나토미라이21 지역 니혼마루 공원묘지에 있는 요코하마 미나토 박물관과 범선 니혼마루다. 미나토 박물관은 개항 150돌을 맞아 요코하마 마리타임뮤지션을 통째로 바꿔 2009년 4월 문을 연 것이다. 항구(미나토) 박물관이란 이름처럼 국제무역항인 요코하마의 역사, 항구의 구조와 역할 등을 소개하는 전시물로 꾸며졌다. 컨테이너 터미널 모형과 선박을 조종하는 모의실험장치도 갖추었다. 니혼마루는 선원 양성을 위해 1930년에 건조된 범선으로, 1984년 퇴역할 때까지 54년간 지구를 45바퀴 이상 도는 183만㎞를 항해하며 1만1500명의 실습생을 길러냈다. 하얀 돛을 펼치면 백조처럼 보여서 ‘태평양의 백조’로 불렸다. 니혼마루가 계류된 석조 선착장은 국가지정중요문화재다.
국제 컨테이너 전략 항만
중국의 상하이·선전·닝보-저우산·칭다오, 한국의 부산 등에 밀려 일본 항만의 국제적 지위는 하락하는 형편이다. 이에 일본 국토교통성은 국제 경쟁력을 가진 거점(허브)항 육성을 위해 1~2개 항만에 투자를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세웠다. 그리고 2010년 8월 게이힌항(요코하마+도쿄+카와사키)과 한신항(오사카+고베)을 국제 컨테이너 전략 항만으로 선정했다. 요코하마항이 포함된 게이힌항은 배후권인 일본 동부지역 화물을 확실히 유지하고, 부산항 등에 대응한 일본의 거점항만을 목표로 한다. 또 중국이나 한국 항만보다 북미지역과 거리가 가깝다는 지리적 우위를 살려 국제 환적 기능을 확대함으로써 ‘동아시아 국제 거점항만’으로 키우려는 야심도 담겨 있다.
국제 컨테이너 전략 항만으로 선정된 요코하마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토교통성은 2012년 12월 요코하마항 부두 주식회사를 특례 항만 운영회사로 지정했다. 이에 앞서 요코하마항 부두 주식회사는 2012년 4월 재단법인 요코하마항 부두공사의 사업을 이어받았다. 이 회사는 요코하마항의 화물 집약 기능 강화, 운영 효율화를 중점 과제로 삼았다. 요코하마항 부두 주식회사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항만수요예측센터(PDAC) 발표 자료를 종합하면, 요코하마항은 7316㏊(2010년 기준) 규모로 요코하마시 전체 면적의 약 6분의 1에 해당한다. 요코하마항은 수심이 깊고 토사 퇴적양도 적은 데다 배후에 인구밀집지대와 공업단지가 있어 물동량 유치에 유리하다.
컨테이너를 비롯해 자동차, 석유류, 곡물 등을 처리하는 종합 물류 항만인 요코하마항의 부두는 총 10개나 된다. 화물은 혼모쿠 부두, 다이코쿠 부두, 미나미혼모쿠 부두를 중심으로 처리되고 있다. 특히 일본 최대 시설을 자랑하는 미나미혼모쿠 부두는 컨테이너 장치능력이 1만8천TEU에 이르고, 안벽 수심이 16m여서 1만TEU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 선박의 입항이 가능하다. 요코하마항 부두 주식회사는 일본 최초로 수심 20m 안벽을 가진 새로운 컨테이너 터미널(MC-3)을 개발하고 있다. 요코하마항에선 수도권 등 배후지역과 자동차 전용 도로 및 철도로 연결된다. 현재 도쿄 방면은 고속 요코하네선, 시즈오카 방면은 도메이 고속도로가 주로 이용된다. 수도권 중앙을 잇는 자동차도로 등 환상 도로망 정비가 진행 중이어서 요코하마항을 포함한 배후지역과의 교통이 편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요코하마항에서 처리한 화물은 1억2139만t이다. 컨테이너는 305만2000TEU를 처리했다. 2008년 348만1000TEU에서 5년간 연평균 3.2% 컨테이너 처리실적이 줄었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은 2009년 279만8000TEU로 크게 감소한 뒤 2010년 328만1000TEU로 늘었으나,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2011년 308만3000TEU로 줄었고 2012년까지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가와사키·도쿄항과 손잡고 국제 기간 항로망 강화, 국내 해상운송망 정비 등을 추진하고 있어 요코하마항의 미래는 어둡지 않아 보인다.
글.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