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TV 시장은 한국 기업들이 주름잡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31분기 연속 세계 평판TV 시장 1위를 지킨 삼성전자는 2006년부터 8년 연속 세계 TV 시장 1위를 차지할 게 확실해 보인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와 치열한 차세대 TV 출시 경쟁에 나선 LG전자도 2009년부터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전자업계의 쌍두마차 격인 두 기업 가운데 LG전자의 멕시코 TV 생산법인은 10년 전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새로운 물류통로를 개척한 공으로 멕시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북미와 중남미 TV 시장을 겨냥해 만든 LG전자 멕시코 레이노사 법인(LGERS)이 멕시코 서부 만사니요(Manzanillo)항과 동부 알타미라(Altamira)항을 연결하는 물류혁신을 이룬데 대한 멕시코 정부의 ‘감사 표시’였다. LGERS는 특히 만사니요항에서 레이노사까지 직송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해 30% 이상 물류비를 줄일 수 있었다. LGERS의 ‘물류 혁신’에 이바지한 만사니요항은 멕시코 최대 컨테이너 항만이다.
멕시코 제1 무역항 성장 만사니요는 멕시코 남서부 태평양 연안 콜리마주(州)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만사니요란 항구도시는 쿠바 동부 그란마주에도 있으며, 올해 7월 쿠바에서 옛 소련산 전투기 등 무기를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던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억류됐던 만사니요항은 파나마 북부 콜론시에 있는 항만이다. 멕시코의 항구도시 만사니요의 인구는 16만1420명(2010년 인구센서스)에 불과하다. 하지만 만사니요항에선 멕시코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를 처리하고 있다. 멕시코 서부 태평양 연안평야를 따라 조성된 천연 양항 가운데 하나인 만사니요항은 멕시코 최대 무역항인 셈이다.
멕시코는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꼬르떼스(Hernan Cortes)가 아스테카 제국을 점령한 1521년부터 1821년까지 3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만사니요항은 멕시코 독립 뒤인 1825년 공식 개항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 이전에도 어선들이 정박하던 항구였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첫 번째 조선소가 지어진 곳이기도 하다. 1522년부터 만사니요에 터를 잡은 유럽인들은 선박을 건조하는 데 제격인 ‘만사니요’란 나무가 빽빽한 강어귀에 조선소를 세웠다. 만사니요란 지명은 선박 재료로 쓰인 나무 이름을 딴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지어진 조선소 자리는 현재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1869년 태평양 연안에서 처음으로 전신사무소가 개설되면서 만사니요항은 멕시코의 주요 항만으로 자리 잡았다. 1890년 태평양 연안 멕시코 항만 가운데 처음으로 만사니요항까지 철도가 연결되자, 상업항으로서 가치가 높아졌다. 1908년 만사니요항은 멕시코 입국을 위한 공식 항만으로 선정됐다. 현재는 대서양 멕시코만 연안에 있는 베라크루스(Veracruz)항과 더불어 멕시코를 대표하는 항만으로 꼽힌다. 벌크화물 물동량은 베라크루스항이 만사니요항보다 더 많다. 그러나 컨테이너 물동량은 만사니요항이 베라크루스항을 크게 앞선다. 멕시코와 아시아 국가들 간 교역이 늘어난 탓이다. 만사니요항에 대해 홍성화 주멕시코 대사는 지난해 국내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의 교역 관문이자 전체 컨테이너 물량의 34%를 처리하는 멕시코 최대 무역항”이라고 설명했다.
1873년 시로 승격된 만사니요는 멕시코의 전설적인 혁명가 판초 비야(Pancho Villa) 휘하 군대에 의해 콜리마주의 주도 콜리마시가 점령당할 위기에 빠졌던 1915년 일주일 동안 임시 주도로 지정되기도 했다. 오늘날 만사니요는 아름다운 바닷가로 이름난 관광지이자 원양어업 기지다. 현지 사람들이 ‘뻬스 벨라(Pez Vela)’라고 부르는 대형 물고기 돛새치(Bill fish)는 만사니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돛새치는 바람을 받아 선박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돛 모양 등지느러미가 특징이며, 크기가 2m에 달한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물고기로도 유명하다.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바다 속을 헤엄치기 때문이다. 이 물고기를 낚기 위한 국제낚시대회가 매년 열리는 만사니요의 한 호텔은 이름이 뻬스 벨라이며, 높이 25m나 되는 푸른 뻬스 벨라 조각이 만사니요 해안 광장에 서 있다. 만사니요를 ‘세계 뻬스 벨라의 수도(Capital Mundial del Pez Vela)’라 부르는 이유다.
컨테이너 처리실적 1위 만사니요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해외 액화천연가스(LNG) 인수기지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가스공사와 삼성물산, 일본 미쯔이상사로 구성된 아시아 KMS 터미널 컨소시엄(Consorcio Terminal KMS de GNL)이 2008년 3월 멕시코 전력청으로부터 수주한 만사니요 LNG 인수기지가 지난해 3월 27일(현지시각) 준공된 것이다. 건설-소유-운영(Build-Own-Operate·BOO) 방식으로 준공 이후 20년 동안 컨소시엄이 소유하며 직접 운영하게 된 만사니요 LNG 인수기지 지분은 한국가스공사가 25.0%, 삼성물산과 미쯔이상사는 각각 37.5%를 보유했다. 86만㏊(약 26만평) 부지에 지어진 만사니요 인수기지는 LNG 운반선이 정박할 수 있는 선석과 15만㎘급 저장탱크 2기, 연간 380만t의 LNG를 기화 송출하는 설비 등으로 이뤄졌다. 총 사업비는 약 9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가스공사는 만사니요 LNG 인수기지에서 기화된 천연가스는 만사니요 발전소와 멕시코 제2의 도시인 과달라하라(Guadalajara)의 민자발전소, 과달라하라 인근 지역에 공급된다고 밝혔다. 한국 공기업과 민간 기업이 주도한 LNG 인수기지가 만사니요에 건설된 것은 입지가 좋은데다 항만 인프라도 잘 갖춰진 덕분이다. LNG 인수기지는 선박에 싣고 온 가스를 재처리한 뒤 지하배관을 통해 필요한 지역으로 보내주는 곳이기 때문에 입지와 항만 인프라가 중요하다.
멕시코는 해안선 길이가 9330㎞나 된다. 해안선이 길어 항만 수도 많다. 멕시코의 주요 무역항으로는 태평양 연안 만사니요항과 라자로 카르데나스(Lazaro Cardenas)항, 대서양 연안 베라크루스항와 알타미라항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만사니요항은 태평양 연안 관문항만 구실을 하고 있다. 2004년 미국 서부 항만들의 적체를 계기로 멕시코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항로 물동량을 유치하고 물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항만시설 확대, 철도망 확충, 물류정보망 구축 등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주요 항만들의 물동량이 증가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 교역이 확대되면서 태평양 연안 만사니요항과 라자로 카르데나스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크게 늘었다.
만사니요항의 경우 1999년 32만TEU였던 컨테이너 처리실적이 2006년 125만TEU로 4배 남짓 증가했다. 2006년부터 176만TEU를 처리한 2011년까지 연평균 증가율은 7.0%에 머물렀다. 그러나 2010년 실적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운 경기가 위축되면서 전년(141TEU) 대비 21.2% 줄었던 2009년(111만TEU)보다 36% 가까이 늘어난 150만9000TEU(세계 75위)를 기록했다. 2009년에도 컨테이너 처리실적이 늘었던 라자로 카르데나스항은 2006년(16만1000TEU)부터 2010년(79만6000TEU)까지 연평균 49.2%란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환태평양 지역 연결 거점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항만수요예측센터(PDAC)에 따르면, 방파제로 보호되는 외항(Polygon1)과 내항(Polygon2)으로 구성된 만사니요항은 2012년 현재 해수구역, 도킹구역, 저장구역을 합해 총 437㏊ 면적에 철도 노선 13.5㎞와 도로 5.4㎞를 갖추고 있다. 면적이 30.9㏊인 외항엔 탱커선석과 크루즈터미널이 있다. 일반·벌크화물 선석,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 등 핵심 인프라는 내항에 집중됐다.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은 만사니요 항만관리청(API nzanillo) 직영 ‘만사니요’와 홍콩의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GTO) 허치슨이 운영하는 ‘TIM(Terminal Internacional de Manzanillo) 터미널’, ‘SSA 멕시코’(SSA Mexico 운영) 등 3개이며, 총 선석 수는 12개. 3개 컨테이너 터미널은 총 8기의 컨테이너 크레인을 갖추었고, 총 선석길이는 2205m, 수심은 12m(TIM 터미널)와 14m(만사니요, SSA 멕시코).
만사니요항의 항행지역은 항만 남동부 남쪽 방파제와 북쪽 방파제 사이 길이 500m, 깊이 14m의 접근수로 외에 북부 계류수면(길이 300m 이상, 폭 32m, 깊이 16m)과 남부 계류수면(길이 300m이상, 폭 28m, 깊이 14m)이 있다. 개발예정구역은 컨테이너 처리, 도로 및 철도 수송을 위한 북동내항 개발구역(PDA 1), 컨테이너 처리를 위한 북동구역(PDA 2), 광관 활성화 위주로 활용될 크루즈 관련 구역(PDA 3), 연료설비 개발 및 운영을 위한 구역(PDA 4), 컨테이너와 일반화물 보관 구역(PDA 5) 등으로 나뉜다.
한편 만사니요항 2단계 컨테이너 터미널 개발·운영권을 따낸 ICTISI(International Container Terminal Services Inc.)는 지난해 초 250만 달러 규모의 만사니요항 제2터미널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KMI에 따르면, ICTISI는 약 18~24개월 공사를 거쳐 만사니요항의 새로운 컨테이너 터미널을 건설할 계획이다. 공사는 3단계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1단계에선 수심 14m를 확보하고, 처리능력 45만TEU의 선석 2개가 건설될 예정이다. 전체 예산의 75%는 터미널 준설에 투입될 계획이라고 한다. 만사니요항에 새 컨테이너 터미널이 완공되면, 환태평양 지역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거점 항만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ICTISI는 세계 10여개 나라에서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는 필리핀의 GTO로서, 지난 2010년 1월 만사니요 항만관리청과 항만운영에 대한 계약을 맺었다. 34년의 운영기간 중 7백만 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의 계약이었다. 이 계약을 따내기 위해 ICTISI는 멕시코 최대 광업기업 그루포 멕시코(Grupo Mexico), 칠레 해운기업 SAAM(South American Air and Shipping Agency)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다. 이 계약과 관련해 만사니요 항만관리청은 연간 200만TEU 처리 능력을 가진 수심 16m 3개 컨테이너 선석(1080m)을 건설하는 2단계 컨테이너 터미널 프로젝트를 마련한 바 있다.
글.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