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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

‘항로와 철도가 만나는 곳’ 타코마 항



한국의 대형 해운업체인 현대상선은 지난 6월 미국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현대상선이 임차해 운영하는 타코마(터코마)항의 컨테이너 전용터미널인 WUT(Washington United Terminals)가 터코마 지역 발전에 이바지한 단체에게 주는 ‘서밋 어워즈(Summit Awards) 경제부문 최고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의 WUT 임차 운영기간은 1999년부터 2028년까지다.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이 일찌감치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사업에 뛰어든 터코마항은 포틀랜드항, 시애틀항, 로스앤젤레스항, 롱비치항 등과 함께 태평양과 접한 미국 서해안의 주요 항만으로 손꼽힌다. 현대상선을 포함해 태평양 항로를 운항하는 선사들이 많이 이용하는 항만이기도 하다.

인디언 땅에서 항만으로
 터코마는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에 있는 항구도시로, 퓨젓사운드(Puget Sound) 만을 통해 태평양과 이어진다. 퓨젓사운드 만에 자리한 또다른 항구도시 시애틀과 터코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미국 서북부 최대 도시인 시애틀에서 터코마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만큼 거리가 가깝다. 두 도시 사이에 지어진 국제공항 이름도 시애틀터코마국제공항이다. 그러나 터코마는 시애틀의 위성도시 대접을 받는다. 시애틀의 인구가 터코마보다 3배(2012년 추계인구 시애틀 61만6500명, 터코마 20만2010명) 많기 때문이다.
 본디 미국이란 나라가 인디언의 땅이었지만, 특히 터코마와 시애틀은 인디언과 관계가 깊다. 두 도시의 이름도 인디언 말이다. 시애틀은 유럽 이민자들이 몰려오기 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인디언 부족의 추장 이름이었고, 터코마는 워싱턴주에서 가장 높은(해발 4392m) 레이니어산의 인디언 이름이다. 이 지역 인디언은 레이니어산을 터코마 또는 타호마(Takhoma)라고 불렀다. 터코마와 시애틀은 이처럼 서로 밀접한 관계지만, 항만으로서 더 많은 화물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입장이다.
 터코마와 시애틀, 미국 서해안의 주요 항만 두 곳이 들어선 퓨젓사운드는 빙하가 녹아 흐르면서 만들어진 피오르드 해협이어서 해안선이 복잡하다. 길이가 160㎞에 달하는 데다 수심이 깊고 반도와 섬도 많아 항만 입지로 제격이다. 터코마와 시애틀뿐 아니라 에버렛, 포트타운젠드 등의 항만이 퓨젓사운드 연안에 자리한 이유다. 이 항만들은 알래스카, 동북아시아 등을 잇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다. 퓨젓이란 이름은 1792년 이 지역을 탐험한 영국 해군의 조지 밴쿠버 선장이 지었다. 퓨젓사운드 만의 주요 수로를 조사했던 밴쿠버 선장의 부하 이름이 피터 퓨젓이었다. 인디언이 터코마라 부르던 레이니어산도 밴쿠버 선장이 친구인 피터 레이니어 제독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터코마에 유럽 이민자들의 정착이 시작된 시기는 1950년대부터다. 기록을 보면, 1952년 스웨덴 출신 니콜라스 델린이 커멘스먼트 베이(Commencement Bay) 부근에 제재소를 지으며 작은 마을이 들어섰다. 이 마을은 1855~1856년 인디언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파괴되고 말았다. 1864년엔 잡 카란 집배원이 터코마에서 첫 우체국으로 쓰였던 오두막집을 지었다. 첫 터코마 시민으로 기록된 카는 이 오두막집을 커멘스먼트 베이 개발을 추진하던 모턴 매튜 맥카버 장군한테 팔았다. 이 오두막집은 현재 ‘잡 카 오두막 박물관(Job Carr Cabin Museum)’으로 보존되고 있다. 맥카버 장군 등이 힘을 기울인 결과 터코마는 1873년 미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 가운데 하나인 노던 퍼시픽 레일로드(Northern Pacific Railroad)의 서부 종착지로 정해졌다. 1875년 11월엔 시로 승격됐다.

철도와 만나 ‘운명의 항만’
 퓨젯 사운드와 연결되는 첫 대륙횡단철도의 서부 종착역으로 결정되면서 터코마는 항만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터코마가 ‘운명의 도시(City of  Destiny)’로 불리게 된 것도 대륙횡단철도 덕분이다. 노던 퍼시픽 레일로드 운행이 시작된 1887년부터 터코마는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 터코마시가 “철로가 항로를 만나면(When rails meet sails)”을 모토로 내세웠을 정도로 대륙횡단철도의 영향력은 컸다. 오늘날에도 타코마항은 “항로와 철도가 만나는 곳(Where Sails Meet Rails)”임을 강조하고 있다.
 터코마항은 미국 동부와 이어지는 대륙횡단철도와 결합한 복합운송 시스템을 갖추어 많은 화물을 처리하고 있다. 시애틀에 견줘 인구가 3분의 1에 불과한 터코마가 시애틀에 버금가는 항구도시 대접을 받는 비결이기도 하다. 타코마항은 최근 시애틀항보다 많은 물동량을 기록할 만큼 번성하고 있으나, 20세기 중반 위기를 겪었다. 핵심 인력이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항구로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차질을 빚은 것이다. 터코마시는 워싱턴대학 캠퍼스 유치, 교통 정비, 부두지역 개발 등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해냈다. 최근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가장 산책 환경이 좋은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터코마는 지난 1979년 2월 한국 군산과 국제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다. 터코마시는 군산개항100주년 기념탑을 1999년 해변시민공원에 세웠고, 군산시는 군산-타코마 자매결연 30주년을 기념하는 ‘평화의 탑’을 2008년 은파호수공원에 세운 바 있다. 또 1999년부터 현대상선이 터코마항 내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인 WUT를 운영하고 있을 만큼 한국은 터코마와 관계가 깊다. 현대상선과 터코마항은 2009년 WUT 개장 10주년을 기념해 ‘프렌드 쉽 박스(Friend Ship Box)’란 문화교류 행사를 열기도 했다. 현대상선 임직원 자녀 등과 미국 초등학생들이 각각 부산항과 터코마항에서 컨테이너 양쪽 옆에 양국을 상징하는 그림을 손으로 그리는 행사였다.
 뿐만 아니라 현재 터코마 시장인 메릴린 스트릭랜드한테 한국은 그냥 외국이 아니다. 그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2009년 터코마 시장으로 당선된 스트릭랜드는 미군 아버지(윌리 스트릭랜드)와 한국인 어머니(김인민) 사이의 외동딸로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7년 가족과 함께 터코마로 옮겼다. 터코마 남쪽 포트루이스 미 육군기지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서였다. 5살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학을 졸업한 뒤 터코마 공립도서관 등에서 일하던 그는 고교 은사인 전 터코마 시장의 권유에 따라 정치에 뛰어들었다. 2008년 타코마 시의원을 거쳐 2009년 11월 터코마 시장에 당선된 그는 2010년 1월 5일 터코마 시장에 취임하면서 매년 1월 9일을 ‘터코마 한인의 날’로 지정해 선포했다.

컨 물동량 시애틀 앞질러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항만수요예측센터 자료를 보면, 터코마항은 미 동부 연안까지 철도로 연결돼 수출입 화물의 복합운송이 가능한 덕분에 아시아와 알래스카로 향하는 관문항 구실을 하고 있다. 컨테이너, 차량, 곡물, 목재, 브레이크 벌크 화물, 벌크 화물 등을 처리할 수 있는 전용 선석을 갖춘 터코마항의 주요 교역국은 중국, 일본, 한국이다. 동북아시아 3국 가운데 가장 큰 수출국은 연간 교역액이 19억 달러인 일본이며, 가장 큰 수입국은 중국으로 연간 교역액이 112억 달러에 이른다. 터코마항에선 주로 곡물, 기계류, 육류, 화학제품 등이 수출된다. 주요 수입품목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기계류, 전자제품 등이다.
 2011년 기준으로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지역 항구 가운데 컨테이너 처리실적 7위를 기록한 터코마항 관리는 1918년 설립된 터코마항만청(Port of Tacoma)이 맡고 있다. 터코마 항만 내 터미널과 창고는 물론 배후물류단지를 포함해 총 면적 972㏊를 관할하는 터코마항만청의 업무범위는 ▲항만 개발과 개발 계획 수립 ▲항만 내 터미널 관리·운영 ▲선박 안전 관리·관제 ▲자유무역지역(FTZ) 관리·운영 등이다. 생물서식지 보호 등 녹색항만 구축도 터코마항만청 몫이다. 피어스 카운티(Pierce County), 허스키(Husky), 올림픽 컨테이너(Olympic Container), WUT, APM 등 터코마항만청이 관리하는 5개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은 총 9개 선석(2884m)에 26기의 컨테이너 크레인을 갖추었다. 현대상선이 임차해 운영하는 WUT의 경우 2011년 7월 블레어(Blair) 부두 재개발 공사를 마쳤다. 임시 돌핀 설치, 15.5m 깊이로 준설, 각각 24열의 컨테이너를 동시에 운반할 수 있는 슈퍼 포스트 파나막스급 갠트리 크레인 2기 설치 등 180m 길이의 블레어 부두를 철거하면서 시설을 개선하는 공사였다.
 북미 서해안의 컨테이너 거점항을 목표로 하는 터코마항의 2012년 컨테이너 처리량(공컨테이너 포함)은 171만1000TEU로 2011년 148만9000TEU보다 크게 늘었다. 그러나 2007년(192만5000TEU)부터 2011년까지(2008년 186만1000TEU, 2009년 154만6000TEU, 2010년 145만5000TEU)는 연평균 마이너스 6.2%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1995년 컨테이너 처리량 기준 세계 28위 항만에서 2011년 48위로 추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반면 인근 시애틀항은 2007년 197만4000TEU에서 2011년 203만TEU로 5년간 평균 0.7% 증가율을 보였다. 시애틀항도 2008년과 2009년 각각 170만4000TEU, 158만5000TEU로 줄었다. 하지만 머스크와 CMA CGM 두 대형 정기선사가 2009년 6월부터 시애틀항으로 취항하면서 컨테이너 물동량이 빠르게 늘어났다. 2010년 213만4000TEU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엔 터코마항이 시애틀항에 앞지르는 모양새다. 지난해 타코마항의 컨테이너 처리실적(171만1000TEU)은 전년 대비 16% 증가했지만 시애틀항은 8% 감소한 187만1000TEU에 그쳤다. 게다가 올해 상반기엔 터코마항의 컨테이너 처리실적이 시애틀항보다 크게 앞섰다. 터코마항은 전년 동기 대비 28.9%나 늘어난 93만8000TEU를 기록했으나, 시애틀항은 22% 감소한 79만TEU에 머물렀다. 이와 관련해 KMI 항만수요예측센터는 하팍-로이드(Hapag-Lloyd), OCCL(Orient overseas Container Line), NYK(Nippon Yusen Kabushiki Kaisha), 짐(Zim) 등으로 구성된 그랜드 얼라이언스(GA)가 시애틀항과 맺은 계약이 지난해 7월 만기된 탓이라고 짚었다. 시애틀항과 계약이 끝난 GA 소속 선사들이 PNX(Pacific North Express)와 NWX(North West Express) 서비스 기항지를 터코마항으로 바꿨기 때문에 터코마항은 물동량이 급증한 반면 시애틀항의 물동량은 급감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부터 타코마항의 컨테이너 처리실적은 크게 늘어났고, 시애틀항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실적이 크게 낮아졌다.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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