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이 지켜온 ‘세계 5위 컨테이너항만’ 자리가 위태롭다. 컨테이너 처리실적을 기준으로 매긴 세계 항만 순위에서 부산항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5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의 닝보-저우산항이 부산항을 추월하는 양상이다. 해양수산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세계 10대 항만의 8월 컨테이너 처리실적을 보면, 부산항은 144만5000TEU였는데 닝보-저우산항은 154만6TEU로 7월(부산항 150만8000TEU, 닝보-저우산항 159만TEU)에 이어 2개월 연속 부산항을 눌렀다. 8월까지 누적 처리실적은 부산항(1176만1000TEU)이 닝보-저우산항(1167만6000TEU)을 앞선다. 하지만 그 차이가 적은 탓에 머지않아 닝보-저우산항이 부산항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전년 대비 8월까지 누적 컨테이너 처리실적 증가율도 부산항 3.6%, 닝보-저우산항 8.2%로 닝보-저우산항의 우세가 두드러진다.
동북아 해상실크로드 거점
부산항을 앞질러 ‘세계 5위 컨테이너항만’ 자리를 꿰찰 기세인 닝보-저우산항은 중국 동남부 저장성(浙江省)에 있는 국제무역항이다. 애초 닝보항과 저우산항은 서로 다른 항구였는데, 2006년 1월 1일부터 닝보-저우산항으로 바뀌었다. 상하이에 버금가는 거대 항만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따라 인접한 두 항만이 통합된 것이다. 저장성은 닝보항과 저우산항을 통합해 2020년까지 세계 3위의 항구로 키우겠다고 2005년 12월 발표한 바 있다. 양쯔강 삼각주 경제권의 주요 항만인 닝보항과 입지 조건이 뛰어난 저우산항을 합쳐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인 셈이다.
닝보-저우산항의 중심은 닝보. 닝보는 오래 전부터 중국의 대표적인 무역항으로 손꼽혔다. 과거 밍저우(明州)로 불리면서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을 잇는 ‘동북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지였던 닝보는 ‘해상왕’ 장보고가 중국과의 무역을 위해 들른 곳으로 알려졌다. 2009년엔 닝보시박물관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이 발견됐다. 고대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불상이 중국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게다가 신라 상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신라방’이 닝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닝보와 신라의 교역이 활발했다.
신라뿐 아니라 고려의 사신과 상인들도 닝보를 자주 찾았다. 송나라 때(1117년)는 고려에서 온 사신이나 무역상을 접대하기 위해 영빈관(고려사행관)까지 지었을 정도다. 닝보시는 고려사관을 복원해 2006년 공개했다. 닝보시내 한복판에 지어진 고려사관을 찾으면 장보고 동상, 한반도와 닝보를 오가던 무역선 등을 볼 수 있다. 조선 성종 때(1488년)는 제주도 인근에서 풍랑을 만난 최부란 관리가 닝보 인근 바닷가에 도착한 뒤 항저우 등을 여행하고 돌아와 중국 기행서인 <표해록>을 지었다.
닝보는 일본, 동남아시아, 중동과의 무역항이기도 했다. 1975년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발견된 ‘신안 보물선’이 출항한 곳도 닝보다. 1323년 도자기와 동전을 싣고 닝보를 출발한 이 배는 일본으로 향하던 무역선이었다. 또 닝보 고려사관 인근엔 아라비아 상인들을 위해 지은 ‘파사관’(波斯館)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예로부터 중국을 대표하는 무역항 가운데 하나로 손꼽혔던 닝보는 저우산과 결합해 세계적인 항만으로 발돋움했다. 수많은 섬들로 이뤄진 저우산군도는 창장(長江) 삼각주를 등지고 있는 닝보의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
상하이 대적할 무역항 저장성은 2005년 12월 20일 닝보항과 저우산항을 통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현재 세계 최대 컨테이너 처리실적을 기록 중인 상하이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닝보-저우산항은 상하이에서 가깝고(상하이 남쪽 직선거리 150㎞) 뛰어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홍콩, 싱가포르, 부산, 오사카 등 태평양의 대형 항구들이 닝보항을 기준으로 1000해리 안에 위치한 것이다. 창장(長江) 삼각주를 등진 탓에 물동량도 풍부하고 저우산군도가 앞에 있어 대형 선박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2008년엔 항저우만을 가로질러 상하이와 닝보를 잇는 ‘항저우대교’가 개통됐다. 항저우대교는 총연장 36㎞로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등에 따르면, 2013년 9월 현재 닝보-저우산항의 선석 수는 723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65개는 1만톤 이상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심해 선석이다. 밀물 때는 30만t에 달하는 대형 선박의 입출항도 가능하다. 양쯔강과 대운하를 통해 중국 전 지역과 연결 가능한 닝보-저우산항은 상하이에 버금가는 항만으로 부각되고 있다. 어쩌면 상하이를 앞지를 것으로도 보인다. 닝보-저우산항은 현재 25만t급 원유터미널, 20만t급 광물터미널(30만DWT까지 접안 가능)과 5만DWT 규모의 화공품 전용 터미널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컨테이너 처리실적은 1683만TEU로 세계 항만 가운데 6위였다. 올해는 ‘세계 5위 컨테이너항만’인 부산항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닝보-저우산항은 베이룬, 치엔허(千和), 중자이(中宅) 등으로 이뤄졌다. 중국정부는 닝보 인근에 공단과 고속도로, 공항 등을 조성하고 수운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닝보시는 수운사업 고정자산에 30억 위안 이상을 투자해 1만t급 이상 선석 6개를 건설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신규 증가되는 항만의 연간 설계 통과능력은 1635TEU만에 달한다. 최근 지난 10년간 7.8배 증가하여 연평균증가율은 세계 30대 항만 중 1위를 기록했다. 특히 닝보-저우산항은 컨테이너 물동량은 2002년 186만TEU에서 2011년 1451만TEU으로 7.8배 늘어났다. 최근엔 중국 최초의 해양전자정보산업기지 입지가 저우산항으로 결정되는 등 중국 해양경제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