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최대 국제항인 탄중프리오크(딴중쁘리옥)의 물류처리 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자바섬 북서부 리웅강 하구에 위치한 탄중프리오크항은 인도네시아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50%를 처리하는 거점항만이다. 그러나 컨테이너 수용 공간이 크게 부족하고 항만 내 접속도로의 교통체증이 심한 탓에 제 구실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마치 동맥경화를 앓아 피돌기가 원활하지 못한 것처럼 화물 처리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인도네시아 정부와 항만공사는 탄중프리오크항의 인프라를 개선하면서, 인근 내륙항과 연계해 물류처리 능력을 높이는 ‘응급조치’에 나섰다.
화물 처리능력 한계 탄중프리오크항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외항으로 19세기에 건설됐다. 수심이 얕은 기존 항만 대신 근대적 설비를 갖춘 항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자카르타의 최대 중심지였던 코타에서 가까운 탄중프리오크항의 최대 수심은 14m에 달한다. 물이 빠졌을 때도 수심 9m를 유지하는 덕분에 대형 선박이 입항할 수 있다. 덕분에 1877년 개항한 탄중프리오크항은 오늘날까지 자바섬으로 통하는 해상 관문이자, 인도네시아의 수출입 거점항 구실을 해왔다.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인도네시아는, 1만800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 섬나라다. 해상운송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대외무역의 약 90%가 해상운송으로 이뤄진다. 국내 화물운송에서 해운이 차지하는 비중도 80%에 이른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상업항 수는 100개가 넘는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인도네시아 주요 항만의 물동량도 크게 늘었다. 인도네시아 상업항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화물을 처리하는 항만이 탄중프리오크항이다.
탄중프리오크항의 컨테이너 터미널은 ‘자카르타국제컨테이너터미널(JICT)’, ‘코자컨테이너터미널(Koja CT)’, ‘PT 멀티 터미널 인도네시아(PT MTI)’, ‘터미널 300(T300)’ 등 4개이며, 면적은 약 171만6000㎡. 15개로 이뤄진 컨테이너 선석의 총 길이는 3450m, 총 안벽크레인 수는 34기. 재래식 선박 터미널과 연간 35만대를 처리할 수 있는 자동차 전용 터미널(Tanjung Priok Car Terminal)도 갖추고 있다. 5만톤급 컨테이너선의 입항이 가능한 탄중프리오크항에서 처리하는 컨테이너는 인도네시아 전체 처리량의 절반에 이른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최근 7년간 탄중프리오크항의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실적은 연평균 10.5% 증가했다. 연도별 처리 실적을 보면 2006년 342만TEU에서 2007년 369만TEU, 2008년 398만4000TEU까지 늘었다. 2009년엔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아 380만5000TEU로 줄었다. 그러나 2010년 471만5000TEU로 91만TEU나 늘었고, 2011년에도 90만TEU 이상 증가한 562만TEU를 기록했다. 2012년엔 전년 대비 10.6% 늘어난 621만4000TEU를 처리했다. 컨테이너 물동량 기준 세계 항만 순위는 2011년 22위, 2012년 21위였다.
문제는 2010년부터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실적이 크게 늘어나자, 탄중프리오크항의 물류처리 시스템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것이다. 탄중프리오크항에선 지난해 621만4000TEU를 처리했지만, 연간 처리 능력은 500만TEU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올해는 700만TEU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처리 능력의 140%나 되는 컨테이너를 처리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이처럼 능력을 크게 웃도는 컨테이너가 몰리면서 탄중프리오크항은 올해 몇 달 동안 컨테이너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 전체 수출 화물의 약 25%, 수입 화물은 약 50%를 처리하는 거점항이 ‘기능 마비’라는 최악의 위기를 겪은 셈이다.
현황과 당면과제 분석 탄중프리오크항은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제정한 국제선박 및 항만시설 보안 규정(ISPS 코드) 심사를 통과했다. 이를 발판 삼아 세계 주요 항만을 잇는 인도네시아의 관문항 구실을 하고 있다. 철도와 도로를 통해 자카르타는 물론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와 연결된다. 인도네시아 교통부 산하 4개 항만공사(PT Pelabuhan Indonesia 또는 Pelindo I~IV) 가운데 제2항만공사가 탄중프리오크항의 관리와 개발을 전담하지만, 주요 터미널은 민간 터미널 운영회사들이 운영한다. 제2항만공사는 민간 터미널 운영회사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제2항만공사는 탄중프리오크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빠르게 늘어난 데 따른 몇 가지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450만TEU를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컨테이너 터미널 공사를 지난해 말 시작했지만, 2017년 완공될 예정이어서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탄중프리오크항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크게 ▲능력을 초월한 컨테이너 물동량 ▲통관에 필요한 시간 지연 ▲접속 도로의 교통정체 세 가지.
일본 대형 손해보험사인 미츠이스미토모해상(三井住友海上)과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분석을 종합하면, 탄중프리오크항은 방파제에 둘러싸인 탓에 대형 선박이 드나들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 컨테이너 보관 공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해 좁은 공간에 컨테이너를 높이 쌓아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해 12월 강풍으로 많은 컨테이너가 무너져 화물이 손상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올해 7월엔 몰려드는 컨테이너를 보관할 공간이 없어 인도네시아 정부와 민간기업 관계자들이 모여서 긴급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 때 결정된 해결책은 공터에 임시로 보관한다는 것이었다. 갠트리 크레인이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 재래식 장비나 선박 자체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사고 위험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통관에 필요한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코트라 자카르타무역관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최대 명절인 르바란 연휴 직후인 지난 8월 초 탄중프리오크항에서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17일이었다. 항만 직원들의 장기 휴가 기간 컨테이너가 쌓였기 때문이다. 통관 절차까지 거칠 경우 그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JETRO는 탄중프리오크항에서 하역된 화물이 통관 절차를 거쳐 반출되기까지 평균 2주에서 1개월이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사 결과를 올해 6월 발표하기도 했다. 통관 직원 수와 업무 능력 부족, 컨테이너 검사 공간 부족과 검사비율 상승 등이 통관 시간 장기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하역된 뒤 통관 절차를 거친 화물을 실어 나르는 접속도로의 교통 체증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탄중프리오크항에서 약 80㎞ 떨어진 자카르타 근교 카라완 공단까지 화물을 수송하는 데 8시간이 넘게 걸린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항만 주변 도로를 충분히 정비하지 못했음에도,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컨테이너 세미트레일러 같은 대형 차량의 왕래가 잦아진 탓이다. 탄중프리오크항의 차량 정체 문제는 매년 악화되는 상황이라고 알려졌으며, 개선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교통 체증은 탄중프리오크항뿐 아니라 자카르타 지역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카르타는 오래 전부터 ‘교통지옥’으로 유명하다.
새항만 개발 프로젝트 국제 무역항인 탄중프리오크항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과의 거리가 25㎞에 불과하고,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철도와 도로도 갖추었다. 원재료와 완제품 수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류 거점인 셈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인근 국가의 주요 항만과 비교해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살펴보았듯 하역 능력 부족에 따른 화물처리 지체, 심각한 교통 체증, 통관 시간 지연 등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JETRO가 현지 진출 일본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탄중프리오크항이 아세안 지역 내 물류 허브로서 잠재성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허브항 구실을 하기는 어렵다는 응답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탄중프리오크항이 제 구실을 못하면서 인도네시아 전체의 물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는 ‘새 프리오크항 프로젝트(New Priok Port project)’를 마련했다. 2011년 5월 인도네시아 정부가 발표한 ‘경제개발마스터플랜(MP3EI)’에 포함된 이 프로젝트의 뼈대는 탄중프리오크항 앞바다에 ‘깔리바루항(Kalibaru Port)’이란 대규모 항만을 새로 개발하는 것이다. 새 항만은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인 탄중프리오크항을 대신할 거점항으로 개발될 예정인데, 2025년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려면 새 항만 개발을 통해 물류비용을 크게 줄일 필요가 있다는 데에서 기획됐다. 새 항만의 공식 착공식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 3월 22일 열렸다.
새 프리오크항 프로젝트는 컨테이너 터미널 3개와 석유·가스 터미널 2개 등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공식 착공식에 앞서 지난해 착공된 첫 컨테이너 터미널은 내년 가동이 목표이며, 컨테이너 처리능력은 150만TEU. 나머지 컨테이너 터미널 2개와 석유·가스 터미널 2개는 1차 사업으로 2017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3개 컨테이너 터미널과 2개 석유·가스 터미널이 완공되면, 연간 450만TEU의 컨테이너와 940만㎥의 석유·가스를 처리할 수 있다. 2023년 2차 사업까지 프로젝트가 완료될 경우, 깔리바루항은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이 정박할 수 있는 수심 20m의 심해항만이 된다. 연간 컨테이너 처리 목표는 1300만TEU에 달한다.
깔리바루항의 첫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을 위한 우선 협상교섭권은 일본 미츠이물산에게 돌아갔다. 올해 3월 인도네시아 제3항만공사로부터 협상교섭권을 획득한 미츠이물산은 올해 10월까지 현지 항만공사 및 선사들과 손잡고 합작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미츠이물산은 협상교섭권 획득 뒤 한국(한진해운), 일본(카와사키 기선), 대만(에버그린), 싱가포르(APL) 등의 해운업체들과 컨테이너 터미널 기항에 대한 교섭을 실시했다. 첫 컨테이너 터미널 외에 나머지 2개 컨테이너 터미널의 운영업체는 내년에 결정될 예정이다. 홍콩의 허치슨포트홀딩스(HPH),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포트월드(DPW), 덴마크의 APM터미널 등이 응찰을 준비 중이다.
새로운 항만 개발뿐 아니라 기존 컨테이너 터미널의 처리능력을 높이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탄중프리오크항의 컨테이너 터미널 가운데 가장 큰 JICT를 운영하는 허치슨 포트 홀딩스는 내년까지 6000만 달러를 투자해, 컨테이너 처리능력을 연간 300만TEU로 늘릴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그밖에 인도네시아 항만공사는 탄중프리오크항에서 외국기업들이 많이 입주한 자카르타 인근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자동차 전용도로 건설에 나서는 등 화물 수송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인근 내륙항만 활용키로
내년으로 예정된 깔리바루항의 첫 컨테이너 터미널 개장과 JICT의 처리능력 확대에 앞서 인도네시아 항만공사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인근 내륙항만을 활용하기로 했다. 컨테이너 적재 공간 부족, 급증하는 수입화물에 따른 처리시간 지연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외부시설 확대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로 수출하는 우리 기업의 물류처리기간이 단축되고, 물류비용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무역관의 9월 13일 해외시장정보 보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제2항만공사는 9월 10일 찌까랑 내륙항만을 관할하는 찌까랑 인랜드(PT Cikarang Inland)와 협력 사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찌까랑 내륙항만을 이용한 물류 체인시스템을 통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컨테이너로 탄중프리오크항의 적재공간이 포화상태인데도 수입물량이 꾸준히 늘어나는 위기에 대한 응급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도네시아 제2항만공사의 RJ 리노 사장은 찌까랑 내륙항만을 이용하면 탄중프리오크항의 컨테이너 처리능력을 최대한 활용 가능하다고 전했다.
현재 찌까랑 내륙항만은 40만TEU를 수용할 수 있는데, 200만TEU까지 늘리는 게 가능하다고 찌까랑 인랜드의 하디 라하르자 사장은 밝혔다. 탄중프리오크항의 컨테이너 처리능력을 160만TEU까지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찌까랑 내륙항만을 활용할 경우 탄중프리오크항을 이용할 때보다 물류비용이 줄어들 전망이다. 리노 사장은 탄중프리오크항에서 찌까랑항까지 운송비가 들지만, 화물 처리 기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전체 비용은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찌까랑항은 탄중프리오크항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내륙항만이지만, 통합관세 서비스존(KPPT)을 갖추었다. 검역 및 금융 시설도 있어 화물을 처리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 수용력이 한계에 도달해 하역시간이 지연되고, 교통정체에 시달려야 하는 탄중프리오크항의 물류처리 시스템 개선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셈이다. 자카르타무역관은 “이번 찌까랑 내륙항만 이용을 통해 이용업체의 물류비용 감소 및 운송기간 단축효과가 기대”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