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 케이프주의 주도인 케이프타운은 연중무휴 운영되는 일반화물 처리 항만이다. 네덜란드가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17세기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에 건설해, 수에즈운하가 생기기 전까지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항로의 주요 거점 구실을 했다. 케이프타운은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내륙으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데 필요한 수송 인프라가 잘 갖춰진 덕분에 남아공을 넘어 남아프리카 지역의 물류허브로 꼽힌다.
남아공 최초의 항구도시
남아공의 공용어인 아프리칸스어(남아프리카네덜란드어)로 카프스타트(Kaapstad)라고 불리는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대륙 최남단 케이프 아굴라스(Cape Agulhas)에서 북서쪽으로 약 222㎞ 떨어져 있다. 케이프타운은 네덜란드가 남아프리카에 건설한 케이프 식민지의 중심지 구실을 하는 동시에 남아공 최초의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보급기지 건설 책임자였던 얀 반 리베크(Jan Van Riebeeck)가 1652년 4월 6일 3척의 선박을 이끌고 케이프타운에 상륙한 뒤,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인들의 이주가 활발해졌다. 이후 아프리카 동부와 인도, 동아시아와의 무역을 위한 네덜란드 선박의 식량 기지로 자리 잡았고, 1815년에는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1910년 영국자치령으로 바뀔 때까지, 영국은 케이프타운을 대인도 무역의 중심지로 삼았다.
케이프타운은 남아공의 입법수도로 불린다. 국회가 있기 때문이다. 남아공엔 입법수도 외에도 행정수도(프리토리아)와 사법수도(블룸폰테인)가 있다. 남아공 최대 도시는 1886년 금광이 발견되면서 빠르게 성장한 요하네스버그. 요하네스버그에 앞서 오랫동안 남아공 최대 도시 자리를 지켜온 케이프타운 인구는 두 번째인 374만명(2011년 조사 결과)이다. 케이프타운의 자매 도시는 프랑스 니스와 이스라엘 하이파. 니스와 하이파는 케이프타운처럼 항구도시들이다.
지중해성 기후인 케이프타운은 5월부터 9월까지가 추운 겨울이며, 10월부터 3월까지는 덥고 건조한 여름이다. 평균 최저 기온은 7℃, 평균 최고 기온은 26℃이다. 해발 300m가 넘는 봉우리가 70개나 되는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높은 산은 ‘테이블마운틴’. 해발 1087m의 바위산인 테이블마운틴은 케이프타운의 상징이자, 관광객들이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꼽힌다. 이 산에 ‘테이블’이란 이름을 붙인 까닭은 산 정상이 마치 식탁처럼 평평하기 때문이다.
케이프타운항을 휘감듯 우뚝 솟아 있는 테이블마운틴은 아프리카의 남단을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길잡이 역할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케이프타운 인근에는 오랜 항해로 고달픈 선원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 있다.
주요시설과 개발 계획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수요예측센터에서 펴내는 월간 <항만과 산업> 2013년 2호와 5호의 케이프타운항 소개 내용을 종합하면, 케이프타운항은 컨테이너 터미널인 벤 쇼먼항(Ben Schoeman)과 던컨항(Duncan Dock)으로 나뉜다. 던컨항의 주요 시설은 다목적 부두와 과일 하역부두, 선박 수리장, 겐트리 크레인, 유류저장소 등이다.
남아공 최초의 항만 기능을 맡았던 빅토리아와 알프레드 부두(Victoria & Alfred Waterfront)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현재는 관광객을 위한 수변공원으로 개발됐으며, 요트 또는 작은 어선의 정박지로도 쓰이고 있다.
남아공은 케이프타운항을 통해 과일, 농축액, 냉동 및 말린 생선, 가공식품 등을 주로 수출한다. 특히 낙엽과수와 감귤 따위 과일 수출량이 많다. 과일 전용 부두는 효율적인 과일 관리를 위해 과일 1만t을 영하 60℃에서 보관할 수 있는 시설과 수심 10.7~12.2m에 길이 213.4m의 과일 수출 전용 선석을 갖추었다. 케이프타운항으로 수입되는 품목은 철강, 기계, 제지, 통나무 등이다.
총 12개 선석을 보유한 케이프타운항에선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들쭉날쭉한 탓에 컨테이너에 싣기 어려운 브레이크-벌크화물(Break-bulk cargo)과 일반화물을 모두 처리하고 있다. 남아공의 공기업인 TPT(Transnet Port Terminals)가 운영하는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의 최대수심은 14m, 선석길이는 1554m이며 포스트 파나막스급 이상의 처리가 가능하다. 이 컨테이너 터미널의 6개 선석에선 겐트리 크레인과 리프팅 설비를 운영 중이며, 이동식 크레인 등 필요한 장비를 꾸준히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TPT는 케이프타운항 컨테이너 터미널의 연간 처리 용량을 42만TEU 늘리기 위해 컨테이너 적재 공간을 3500TEU에서 4500TEU로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또 RO-RO 작업장을 옮겨서 연간 5만TEU의 처리 용량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다. 그러나 케이프타운항은 컨테이너 보다 비컨테이너 물동량이 더 많다.
컨테이너 물동량은 계속 줄고 있다. 케이프타운항의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은 2006년 76만5000TEU에서 매년 평균 2.3%씩 줄어 2010년 69만7000TEU(세계 항만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실적 121위)를 기록했다. 컨테이너를 제외한 케이프타운항의 2012년 총 물동량은 약 385만3000t(벌크화물 352만6000t, 브레이크-벌크화물 32만7000t)이다.
물류허브 적합한 항만
1869년 11월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돼,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새로운 바다의 무역로가 뚫릴 때까지 유럽-아시아 항로의 주요 거점항이었던 케이프타운의 물동량은 더반항보다 적다. 요하네스버그에 밀려 남아공 최대 도시 자리에서 물러난 데 이어 남아공 최대 항구란 명예도 더반항에 내준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케이프타운항은 더반항과 함께 남아공을 대표하는 항구 대접을 받고 있다.
케이프타운은 교통의 요지여서 물류 허브 구실을 하기에 제격인 항만으로 꼽힌다. 아프리카 내륙과 이어지는 수송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케이프타운엔 남아공 주요 도시와 많은 국제도시로 직접 연결되는 국제공항이 있다. 또 내륙으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철도와 도로가 시작된다. 케이프타운은 화물 처리 시설과 함께 대형 어선 등을 수리할 수 있는 수리장을 항만 안에 갖추어 조선 및 기계 산업이 발달했다. 과일 수출이 많아서 냉장·제분·제과·농수산물 가공 등도 성하다.
사하라 사막 이남 ‘블랙 아프리카’는 보통 서부, 중부, 동부, 남부 4개 권역으로 나눈다. 남아공이 속한 남부아프리카는 나머지 권역과 물동량 증감률 패턴이 다르다. 남부아프리카 항로의 수출입물동량은 마치 유럽처럼 증가율이 크지 않다. 반면 서부아프리카나 동부아프리카 항로의 수출입물동량 증감률은 변동폭이 크다. 남부아프리카 중에서도 남아공은 모든 산업이 비교적 골고루 발달한 덕분에 물동량이 안정적이다.
한편, 2011년 기준으로 한국과 남아공의 교역규모는 전년 대비 36% 증가한 53억 달러였다. 두 나라의 교역은 2000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남아공 월드컵 이듬해인 2011년 한국은 승용차(9억2000만 달러), 경유(1억1200만), 건설중장비(9300만), 합성수지(8750만), 무선전화기(7880만), 화물자동차(7100만) 등 22억5000만 달러를 수출했다. 한국이 남아공으로부터 수입하는 품목은 백금(6억2400만) 철광석(5억1400만), 유연탄(3억8200만), 합금철(3억4800만), 동괴 및 스크랩(2억9600만) 등 주로 광물자원이었으며, 2011년 총 수입액은 31억 달러가 넘었다.
글.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