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해운시장이 장기침체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녹색해운’을 향한 국내외 선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해가 갈수록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녹색해운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해운업계에선 녹색해운이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다. 녹색해운이란 패러다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선사는 심각한 위기를 겪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잘 대응하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녹색해운은 선사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해운산업까지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기오염 줄이는 LNG 선박 녹색해운은 선진국들만의 몫이 아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지구촌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녹색해운을 선도하는 것은 선진국이다. 주로 유럽과 미국이 앞을 다투어 녹색해운 정책을 추진하는 분위기다. 해운선진국 소속 선사들도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을 발주하는 등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중국, 대만 등 글로벌 선사들을 보유했거나 항만 물동량이 많은 나라들도 녹색해운에 적지 않은 힘을 쏟고 있지만 선진국에 견주면 아직 부족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비용절감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녹색해운을 활용하라고 선사들에게 주문한다. 미래 해운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녹색해운이 주도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처럼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보유하느냐에 따라 선사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내다보는 경우가 많다. 2009년 1월 유럽연합(EU)이 폐기물 및 배기가스 제로를 목표로 제시한 ‘해상운송전략 2009~2018’을 발표하는 등 갈수록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대응하는데 현재로선 LNG 추진 선박만한 게 없어서다. 실제로 선진국 선사들은 일찍부터 LNG 추진 선박을 도입하고 있다.
영국 헨리 미디어 그룹이 발행하는 항만 저널 <포트 테크놀로지>(Port Technology)는 지난 2월26일 미국이 세계 최초의 LNG 추진 컨테이너선을 건조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방위산업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나스코(NASSCO) 조선소에서 LNG 연료를 사용하는 ‘멀린급’ 컨테이너선 2척을 건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232m 길이에 20피트 크기의 컨테이너 3200개(3200TEU)를 수송할 수 있는 이 LNG 컨테이너선은 미국 뉴저지에 본사를 둔 해운물류회사 TOTE(Totem Ocean Trailer Express)가 3억5000만 달러에 발주했다. TOTE는 2015년 말이나 2016년 자회사인 시스타(Sea Star)에 LNG 컨테이너선 2척을 인도할 계획이다.
시스타는 2척 모두 미국 뉴저지 잭슨빌-푸에르토리코 항로에 투입할 예정으로 알려졌는데, 이미 피버틀(Pivotal) LNG 및 웨스팩 미드스트림(WesPac Midstream) 2개 업체와 선박용 LNG 연료 공급 계약을 맺었다. 시스타가 운영할 멀린급은 세계 최초의 LNG 컨테이너선으로, 기존 항로를 운항 중인 시스타의 컨테이너선들보다 60% 더 많은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 게다가 기존 선박의 배출량보다 이산화황 98%, 아산화질소 및 이산화탄소 99%, 미세먼지 71%의 감축이 가능하다. 앞서 2012년 TOTE는 알라스카를 운항하는 로로(roll-on roll-off) 선단을 LNG 선박으로 바꿀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또 터코마-워싱턴-앵커리지-알라스카 항로를 운항하는 2척도 2017년까지 LNG 선박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히는 등 LNG 선박 도입에 적극적이다.
선박연료 배출규정 대폭 강화
EU는 2009년 1월 ‘해상운송전략 2009~2018’ 발표에 이어 2012년 11월 선박 연료의 유황 함유량 관련 지침을 바꿨다. 이 지침에 따르면 발트해와 북해, 영국해협이 포함된 SECAs(Sulphur Emission Control Area)를 운항하는 선박은 2015년 이전까지 유황 성분이 0.10% 이하인 연료를 써야 한다. 2015년 1월 1일 이후 연료에서 0.10% 이상 유황 성분이 검출된 선박은 제재를 받게 된다. EU뿐 아니라 국제해사기구(IMO)도 깨끗한 연료 사용을 규정하고 있다. 모든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은 2020년까지 연료의 유황 함유량을 0.50%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게 IMO 규정이다.
선박 연료의 유황 성분을 줄이기 위해 EU는 화석연료 대신 LNG 사용을 적극 권장한다. 유럽의회는 지난 1월24일 발표한 ‘깨끗한 운송수단 만들기(Clean Power for Transport Package) 계획’을 통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에너지 개발을 요구했다. 이 계획은 LNG의 경제적·환경적 장점을 설명하며 LNG가 미래 연료라고 강조하고 있다. 디젤 같은 화석연료보다 탄산가스, 이산화황, 질산가스, 미립 물질 등의 배출량이 매우 적은 LNG로 바꿀 경우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상무역이 발달한 네덜란드 등을 중심으로 LNG 선박 개발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2월 코트라 암스테르담무역관 보고서를 보면,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의 100% LNG 연료 바지선인 ‘그린스트림’(Greenstream)을 선보였다. 지난해 3월부터 운항되는 이 바지선을 통해 네덜란드는 ‘친환경 화물선’을 현실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덜란드에선 선체나 프로펠러의 저항을 줄이는 기술도 개발됐다. 네덜란드의 한 선박설계회사가 선체의 압력 분포를 바꾸어 저항을 줄임으로써 추진력을 높이는 프로펠러를 개발한 것이다. 이 프로펠러는 대형 컨테이너선의 연료를 7.5%(다른 화물선 4~8%) 절약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노르웨이에선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추진력을 높여 더 적은 연료로 항해하는 친환경 화물선을 개발 중이다. 노르웨이어로 ‘바람의 배’(Vindskip)란 이름의 이 화물선은 연료 60%와 배기가스 80%를 줄일 수 있는 미래형 선박으로 주목을 받는다. 개발업체는 2012년 노르웨이 및 국제 특허를 획득하고 현재 조선소나 선주들에게 사용 허가(라이선싱)를 내줄 예정이다. 녹색해운이란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조선회사와 선박설계회사들도 친환경 화물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2010년 녹색경영을 선포한 삼성중공업의 경우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5년까지 30%, 2030년까지 70% 줄인 친환경 선박을 개발할 계획이다.
글.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