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베트남 조선 야드 전경. [사진=HD현대]
국내 조선업계가
해외 사업장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선박 발주 슈퍼사이클로 국내 도크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추가 생산능력 확보와 원가 절감 효과를 동시에 노릴 수 있는 동남아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거점 확대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행보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탈(脫)중국’ 공급망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HD현대는 최근 해외 진출 행보에서 가장 발 빠른 모습을 보였다. 지난 24일 HD현대의 조선 부문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두산에너빌리티와 베트남 법인 두산에너빌리티베트남(두산비나)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가는 약 2900억 원 규모다. HD현대는 두산비나를 액화천연가스(LNG)·암모니아 추진선에 탑재되는 독립형 연료탱크 제작 기지이자, 아시아
지역 내 항만 크레인 사업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독립형
탱크는 기존 국내 조선소나 협력업체에서 주로 제작해왔지만, 친환경 선박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국내
시설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독립형
탱크 수요가 늘면서 생산 거점 다변화가 필수적”이라며 “베트남
기지는 향후 친환경 선박 경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는 베트남 외에도 필리핀 수빅 조선소를 중대형 유조선 건조 기지로 재편하고 있으며, 1996년 설립한 HD현대베트남조선의 운영 기간 연장도 추진 중이다. 김성준 HD한국조선해양 대표는 최근 베트남 당 서기장을 만나 운영
기간을 기존 50년에서 70년으로 늘려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조선업계가
이처럼 해외 사업장 확대에 적극 나서는 배경에는 국내 생산시설 포화가 자리 잡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의
올해 상반기 가동률은 107.6%, 한화오션은 101.2%, 삼성중공업은 **116%**로 집계됐다. 세 회사 모두 가동률이 100%를 초과하며 실제 생산량이 설비 한계치를 웃돈 것이다.
‘조선
빅3’는 슈퍼사이클이 시작된 2022년 이후 고가동률을 유지해왔다. 이에 따라 각사는 생산 거점을 해외로 확장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한화오션은
미국 필리조선소와 싱가포르 해양플랜트 기업 다이나맥을 인수한 데 이어, 호주 방산 조선소인 오스탈 지분
확대와 브라질 현지 조선소 협력까지 추진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베트남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베트남과
손잡고 현지 생산시설을 활용한 유조선 및 화학제품 운반선 건조 협력을 모색 중이다.
업계는
이 같은 신흥국 진출이 중국과의 경쟁 구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동남아 지역은 인건비와
원가 경쟁력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어 중국에 대응할 수 있는 대체 생산지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저가
선종의 경우 국내보다는 동남아에서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아울러
해외 거점 확대는 탈(脫)중국 공급망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미국이 최근 중국산 선박에 대한 입항 수수료 부과를 추진하는 등 대중 제재 기조를 강화하고 있어, 국내 조선사들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중국 내 블록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동남아 거점이 대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필리핀
수빅 조선소는 한미 조선 협력의 전략적 거점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필리핀 정부는 최근 미국
정부에 수빅 조선소를 미 해군 함정 건조 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이번에 HD현대가 인수한 두산비나의 항만 크레인 제조 역량은 중국산 크레인 의존도를 줄이려는 미국에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역시 지난 5월 미국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와 만나 두산비나의 항만 크레인 역량을 소개하며 공급망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결국 국내
조선 3사의 동남아 확장은 단순한 생산기지 확대를 넘어, 중국
견제·글로벌 공급망 재편·한미 조선 협력까지 포괄하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