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컨테이너선대가 점점 대형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아시아와 미국, 유럽에서 각각 생산, 소비되는 물건의 양을 고려해본다면 별로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계 무역 불균형의 거대한 상징이 돼버린 이 컨테이너선들이 너무 이치에 안 맞게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드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BBC 월드 서비스의 최근 기사를 소개해 본다.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보다도 더 긴 4백m 길이의 파란색 물체는? 대답은 올해 인도될 Triple E 클래스의 신규 컨테이너선이다.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사가 발주한 이 선박이 금년 6월 서비스에 들어가면 바다를 헤치며 다니는 선박 중에 세계 최대 규모가 된다.
한 척을 건조하는 데 소요되는 철강은 에펠탑의 8배나 되고 20푸터 컨테이너(TEU)를 1만8천개 적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 컨테이너들을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쌓아놓으면 옥외광고판과 몇몇 빌딩들보다 더 높이 올라갈 것이다.
만약 1.6km 길이의 기차에 2단으로 1만8천TEU를 적재한다면 30대 분량의 기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컨테이너들안에는 3만6천대의 자동차내지는 8억6천3백만 개의 삶은 콩 통조림이 실릴 수 있다.
사실 Triple E가 이제까지의 선박 중에 최대 크기는 아니다. 그 명예는 1970년대 건조된 초대형 유조선(ULCC)에게로 가야되지만 길이 400m 이상의 ULCC는 몇 년 전에 모두 해체됐고 그 중에는 운항기간이 10년을 못 채운 배들도 몇 척 있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ULCC 두 척만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을 뿐. 반면 초대형 컨테이너선들은 여전히 건조되고 있는 물량이 많고 지금도 계속 수가 늘어나고 있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게 된 크기의 컨테이너선이 처음 출현했던 때가 25년 전이다. 이 첫 번째 포스트 파나막스 컨테이너선의 규모는 4천3백TEU급으로 작년 11월 프랑스 국적선사인 CMA CGM이 운항을 시작한 1만6천2십TEU급, 즉 현재로서는 최대 규모인 마르코 폴로호의 1/4 적재능력을 갖고 있었다.
해운업계에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없고 국제 교역상 또 하나의 병목지역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간 말라카 해협을 겨우 통과할 정도 급의 거대 선박에 대한 얘기가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 ‘말라카막스’로 불리는 이 규모의 컨테이너선은 대충 3만TEU급으로 추측된다.
이번에 나오는 Triple E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수에즈 운하를 겨우 항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세계에서도 소수의 항만에만 입항할 수 있는 거대 선박이다. 북미에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항만이 아직 없다.
조만간 진수될 이 컨테이너선의 유일한 목적은 머스크사의 아시아와 유럽 간 이른바 펜듈럼서비스에 투입되는 것이다.
현재 컨테이너선들이 유럽에 도착할 때는 화물이 꽉 차있지만 떠날 때는 상당수의 컨테이너들이 빈 상태로 돌아간다. 전 세계 해상에서 돌아다니는 총 컨테이너의 약 20% 정도는 언제든 비어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Triple E 선박이 기항할 걸로 예상되는 항만들 중 하나인 영국 펠릭스스토우항 운영사 허치슨포트의 폴 데이비는 “선박들은 오랜 기간 동안 규모가 점점 커져왔습니다. 항만들 또한 한 가지 도전을 받고 있는데 이 거대 선박들이 가동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먼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이죠. 이 게임에서 한 발자국 앞서 있어야합니다.”라고 말한다.
세계 항만들의 설비과잉은 이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The Box - 컨테이너가 어떻게 세계를 더 작게 만들면서 그 경제는 더 키웠는가’의 저자인 마크 레빈슨은 항만 운영사들이 경쟁에서 뒤쳐질 여유조차 없다고 강조한다.
항만들이 갈수록 어려운 경쟁 상황에 놓이게 되는 이유는 선사들이 “만일 당신네 항만이 확장을 하지 않는다면, 즉 새 부두를 건설하고 수심을 더 깊게 하며 고속 크레인을 갖추지 않는다면 다른 항만으로 옮기겠다”고 근본적인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해상에 떠다니는 이 거대한 물체들은 항만으로 하여금 또 다른 도전에 맞닥뜨리게 한다. 선주들은 자신의 선박이 24시간 이내에 하역과 선적을 마치길 바라는데 이는 다양한 연쇄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항만 내에 컨테이너를 쌓아둘 공간이 더 필요해지고 치솟는 물동량에 대처하기 위해 선박과 철도, 도로 사이의 연결 고리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
영국 컨테이너 교역량의 42%가 처리되는 펠릭스스토우항은 일일 58회나 기차가 들어오지만 올 연말 3번째 철도 터미널을 개장하면 회 수를 두 배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아울러 초대형 선박들은 보통 선박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대형선박들이 지나가면서 발생시키는 파도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다른 배들이 피신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데 1912년 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를 시작했을 때 SS City of New York이라는 여객선이 겪었던 사례가 그렇다.
이와 관련해 미국 최대 건설 및 엔지니어링 회사인 Bechtel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마르코 플뤼즘은 “요즘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그런 현상을 더 자주 겪게 됩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배의 속력을 낮추고 선박조종이 쉽도록 예인선들을 옆에 갖다 붙이는 건데 그것도 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죠.”라고 말한다.
현재 세계에서 1만TEU 이상의 적재능력을 갖고 있는 컨테이너선은 163척. 여기다 머스크의 Triple E 20척을 포함해 120여척 이상이 이미 발주에 들어간 상태다.
IMO 발표에 의하면 국제해운업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은 세계 전체 배출량의 약 2.7%로, 항공업계와 거의 맞먹는 다는 점에 유념해볼 때 전례 없는 엄청난 수로 대양을 조각내고 있는 이 거대 물체들이 녹색 소비자들에게는 큰 걱정거리로 다가올 전망이다.
하지만 머스크는 Triple E가 지금까지 선박 중에 가장 환경 친화적인 컨테이너선이라고 반박한다. 머스크에 따르면 Triple E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 에너지 효율(energy efficiency) 그리고 환경측면의 개선(environmentally improved)에서 앞 글자 ‘E'를 따온 것이다.
현재 1만5천5백TEU급의 엠마 머스크호보다 겨우 3m씩 더 길고 넓지만 화물은 16%나 더 운송할 수 있다고 한다.
재설계된 엔진과 향상된 폐열 회수 시스템 그리고 속도를 25에서 23노트로 줄임으로 인해 현재 아시아-유럽 항로에서의 컨테이너당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 감량시킬 수 있을 걸로 머스크는 계산하고 있다.
온라인 발행물인 ‘지속가능한 해운’의 우니 에이네모는 “큰 배를 투입하면 더 많은 화물을 더 효율적으로 실어 나르게 되고 화물 톤당 탄소배출량도 더 적어지게 되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큰 것이 훌륭한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연료 효율성을 최대화시키려면 선박에 화물이 가득실려야만 하는 데 이에 대해 에이네모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화물이 반만 차게 되면 가득 실린 소규모 컨테이너선보다 전반적으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인정했다.
머스크의 Triple E 선박들은 화물량의 성장이 비교적 정체시기에 이르렀을 때 서비스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몇몇 전문가들은 2015년까지 시장이 회복되지 않을 걸로 예상한다. 그러나 세계 컨테이너 선복량은 머스크와 다른 선사들이 몇 년 전에 발주한 선박들을 인도받으면서 올해만 9.5%나 성장할 걸로 예측된다.
몇몇 추가적인 선대는 감속운항이라는 새로운 관행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20~24노트 대신 12~15노트로 운항속도를 줄이면 연료를 어마어마하게 절약하게 된다. 물론 이 추가 선대가 다른 배와 똑같은 기간에 똑같은 화물량을 운송하도록 요구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편 머스크는 7년 전 성장률의 반에 조금 못 미치는 5~6%대에서 컨테이너 교역량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걸로 확신하고 있다. Triple E에 투자된 1억9천만 불(척당)을 회수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얘기다.
앞에서 언급된 마크 레빈슨은 몇몇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아시아에서 생산기지를 철수하고 있는 동향을 가리키면서 “컨테이너해운의 역사를 보면 선사들의 엄청난 모험이 꼭 수반됐습니다. 머스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해운업계에는 많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뉴욕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호프스트라 대학의 장 폴 로드리게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Triple E같은 대형 컨테이너선이 특정 항로에서 제 가치를 발휘할 걸로 믿고 있다.
“차세대선박이 나타날 때마다 논쟁이 생깁니다. 이번에는 좀 도를 넘는 거 아닌가? 이를 정당화시킬 만큼 충분한 항만 교역량이 있을까? 그러나 매번 선박의 규모는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었고 꽤 괜찮은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라고 로드리게 교수는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자료 제공 : BBC World Service)
글 한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