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생 내 힘으로’ 스물다섯 갈매기의 꿈

2016.07.21 18:26:36

국립부산해사고 졸업생 김지수 항해사의 인생 이야기



 50여 개국 200-300여 개 도시 기항, 국제 해사노동협약 선원노동권에 대한 문제점과 현실적 한계에 대한 논문 발표, 2015 올해의 플리머스 해사학위협회 최우수 논문상, 해운항만 국제학술대회 우수상 및 장학, 해군 제1군사 교육단 해군대령상, 존 파커 경(회장)의 세계 해운을 이끌어갈 리더를 위한 장학 수여, 중국 상해해사대학교 전액장학 연수생, 한국선급 런던지사 연구생,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중국 상해센터 인턴, 플리머스 해양연구소 인턴, 영국 코오퍼레이트 로지스틱사 물류 시스템 분석, 한국해사문제연구소 물류연수 우수상, 이 독특한 경력은 영어 한 마디 못해 영국 히드로공항 입국심사대 앞에서 붙잡혔던 한 한국인 청년의 스토리다. 올해 나이 스물다섯, 국립부산해사고등학교(마이스터고) 졸업생 (IMS KOREA 소속) 김지수 항해사의 이야기이다. 


 중학생 때부터 부모님에게까지 항상 꼴통 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김지수 군은 본인의 학업문제로 가정불화가 잦았다. 그러던 중 공부 못하는 유별난 학생회장이 되었고 아버지는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추천했다. 김지수 군은 자신만의 길을 원했고 여러 특성화 고등학교 진학설명회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부산에 위치한 해사고등학교를 발견했다. ‘내 일생 내 힘으로’ 라는 부산해사고등학교 슬로건에 걸맞게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항해과에 지원했다. 그는 사실, 아마 모든 사춘기청소년들이 그렇듯, 부모님의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에서 최대한 벗어나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마이스터고에 입학한 김지수 군은 1학년부터 학생회 사관부 차장, 부장을 거쳐 고2 때 일본송출선사(S선사)의 산학장학생으로 입사한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랐던 현실에 좌절한다. 회사에서는 인건비의 절약을 위해 김지수 군을 실습항해사(준사관)가 아닌 말단선원인 갑판원으로 승선시켰다. 그는 며칠 밤을 새워 집중력이 떨어지고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일하다 갑판에서 몇 번이나 떨어졌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말은 괜찮냐는 걱정보다 욕설과 폭언 그리고 잦은 수모였다. 함께 떨어진 장비에 깔려 절룩거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일해야 했다. 화물탱크 청소 중 사용되는 화학약품을 마시고 취하기도, 폭발 위험이 있어서 금지된 작업까지 강제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인권의 사각지대 그리고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의 참담함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그렇지만 김지수 군은 1년을 악착같이 버틴 후 실습을 끝마치고 항해사가 되었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일념으로 모아둔 돈을 모두 들고 영국으로 홀연 단신 떠난다.



대학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중학교 때부터 영어점수는 수우미양가 중 ‘양’ 혹은 ‘가’를 기록하던 김지수 군은 영어 공부를 위해 볼펜을 잡고 도서관에 앉아있는 연습부터 시작했고 1년 간 도서관이 텅 빈 후에야 집에 돌아갔다. 그렇게 김지수 군은 유럽 최대의 해사, 해양대학을 보유한 플리머스 대학교에 진학한다. 첫 수업, 그는 대학의 개념을 재정립했다. 한국에서 대학은 고3을 졸업하면 들어가는 곳이었다. 고등학교 3년 간 수능이라는 입시경쟁에 찌든 채 학생들은 본인이 꿈 이라 생각한 진로를 찾아 학과를 선택하고 입학한다. 그러나 입학 후에는 현실이라는 큰 벽이 기다리고 있다. 현실은 고된 노동이 될 수도 있고, 막상 경험해 보니 적성과는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지수 군의 첫 수업 동기들은 11개 국적의 기혼 35살 동기부터 여성 항해사와 해운사에서 이미 몇 년 간 근무 후 입학생까지 다양했다. 선 취업, 후 진학. 진짜 하고 싶은 게 생겨서 가는 곳. 그것이 김지수 군이 가진 대학의 개념이었다. 그렇게 입학한 친구들은 에이레벨(영국의 수능)을 막 패스하고 입학한 어린 학생들보다 열정의 크기와 질도 그리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수업 이해도까지 확연히 달랐다.





 입학 후, 김지수 군은 부산해사고와 업계에서의 경험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력으로 일주일이면 끝나는 과제를 붙잡고 한 달을 매달렸고 그 노력으로 첫 과제에서 84점이라는(70점 이상 First Class) 학과 내 최고점을 받았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1학년부터 영국 코오퍼레이티브 로지스틱사 물류 시스템 분석 등의 과제를 달성해내고 꾸준한 중국어 공부와 우수한 학점으로 중국 상해해사대학교 단기연수 전액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생활비의 일부는 플리머스 해양연구소 근무로 충당했고 다음해 한국해사문제연구소 물류연수 우수상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중국센터 인턴으로 근무하며 상해에서 외교/해운/물류 컨퍼런스와 한국에서 제주국제크루즈포럼 등의 참석으로 견문을 넓히며 네트워크와 학식을 쌓았다. 그리고 대학교의 거의 모든 네트워킹 행사에 참석하며 진로에 대한 탐색으로 업계 인사들에게 끊임없이 연락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지막 학년의 시작에서 김지수 군은 본인이 속했던 집단의 어려움, 바로 선원인권과 해사노동협약의 모순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구축해둔 세계 각지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 세계 10개국(한국, 중국, 싱가포르, 필리핀, 미얀마, 인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말레이시아, 폴란드)에 400여개의 설문조사를 26일 만에 따내며 데이터 수집에 성공했다. 또한 부산항과 해운대리점 전국을 뛰어다니며 20개의 세미인터뷰, 5개의 심층인터뷰를 성공시켰다. 김지수 군의 선원 인권에 대한 글은 ‘선주의 비용을 가중시키므로 업계 진출을 고려한다면 신중해야 한다.’는 담당교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성된 논문으로 이어진다. 이후 모범적인 대학생활과 다채로운 활동으로 앵글로 아메리칸, 카니발, 디피 그룹 등의 총회장인 존 파커 남작 경의 장학생이 되었다. 모르는 것은 박사과정 선배에게 질문하여 통계학을 독학해 데이터 분석에 성공하고 해사노동협약에 대한 다양한 업계의 시선을 고루 반영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 위치한 국제해사기구의 사무관을 만나며 한국선급(KR) 런던지부에서도 2달 간 수학했다. 감사하게도 수학기간 중 국제해사기구의 임기택 사무총장님을 만나뵙는 영광까지 안으며 김지수 군은 ‘해사노동협약의 현실적 한계로 선원들은 더 고통 받고 있다.’라는 모순점을 증명해냈다. 결국 우수한 학점과 함께 플리머스 대학, 올해의 플리머스 해사학위협회 (Plymouth Nautical Degree Association) 최우수 논문상 (플리머스대학교 경영 대학장 및 총 해사학위협회장상)을 수상하며 졸업식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일주일 뒤 군 입소식 1분 전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해운항만 국제학술대회에 논문을 공모해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의 영광을 안았고, 군사 훈련 동안에는 간부 훈련병으로 모범적이고 우수한 점수를 획득해 해군대령상을 받았다. 김지수 군은 이 모든 결과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쾌거라 하면서 누군가 해야 했을 일이며 세상에 이룰 수 없는 꿈은 없다고 말했다. 선박에서 인권의 부재에 울었던 18살 갑판원은 이제 본인이 속한 세상을 바꿀 교두보를 만드는 중인 것이다.






학교 성적은 과연 꿈꾸는 청년에게 어떤 의미일까?


 학교 성적이 물론 학생의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학교 성적으로 인해 좌절하는 청소년의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해서 김지수 군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적과 외국에서의 학위와 자신의 커리어가 아니다. 큰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정신이다. 그는 그가 이룬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오늘까지의 경험은 스스로를 증명해 수여받은 소중한 마라톤 참가상 즉 예선전의 통과와 같은 작은 도전들의 산출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비롯된 새로운 가치관과 도전정신은 청년들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김지수 군은 실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진학이 아닌 다양한 진로의 탐색을 원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14시간 정도의 경비행기 비행조종시간도 보유 중이다. 김지수 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초중고 생활기록부를 다시 읽어보며 학교 성적이 결코 사람의 꿈을 좌우하지 않는 다는 걸 알겠다는 말을 했다.


 15살, 어린 나이에 시작된 김지수 군의 해운계 커리어는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간다. 부산해사고등학교(마이스터고)를 졸업한 김지수 항해사는 점차 장인(마이스터)으로서 성장해 나가고 있다. 그는 추후 그의 특기를 활용해 ‘요트로 세계일주’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다.






공부만이 아닌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


 한국에서 만난 그의 멘토의 소개로 영국해상변호사와의 요트여행과 해상보험전문가와의 아일오브화이트 섬에서 하루, 휴가 때는 한국에서 수요일 조찬모임의 다양한 업계 대표들을 만나 보면서 그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는 매년 여름과 겨울 한라산을 정복하고, 스위스 알프스 산맥 샤모닉 몽블랑 정상에서 스키를, 바르셀로나와 영국 톤튼에서 서핑을, 체코 프라하에서 스카이다이빙을 즐기며, 파리 세느강에서 정말 맛있는 피자와 맥주를 먹고, 벨기에에서의 항만탐구, 유럽과 영국 각지의 해운인들과 만남 등의 경험과 또한 유네스코 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 (UNESCO APCEIU) 통역, 연탄 나눔 봉사, 아프리카 빈곤 아동 2명 후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다채로운 경험이 결국 새로운 가치관 정립과 목표 수립 그리고 발전으로 이어지며 더 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각지에서 만난 인연과 다양한 경험으로 김지수 군은 정체성을 확립하였고 플리머스 해사학위협회 최우수 논문상 수상이라는 결과로 모든 경험들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잠재력은 앞으로 김지수 군의 새로운 경험과 도전으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것이다.


 김지수 군은 국내 3개의 중, 고, 대학교 강연자로 초빙되어 자신의 스토리로 청춘들의 열정과 새로운 도전을 끌어내고 있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나오는 새로운 가치 ‘내 일생 내 힘으로’ 슬로건의 달성은 부산해사고등학교 졸업생에게 현재진행형이다. 김지수 군은 현재 군 복무를 위해 다시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케미컬 선단 삼등항해사로 근무 중이다. ‘간절함과 열정이 만나면 꿈은 이루어진다.’ ‘무엇이든 생각만 하지 말고 확고한 의지로 결단 후 실제로 도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조언하는 김지수 군은 오늘도 청춘을 대표해 인도양 먼 바다를 항해 중이다.

쉬퍼스저널 mediak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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