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현대삼호가 건조한 9만3000㎥급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사진=HD현대삼호]
한국과
중국 조선업계의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경쟁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넘어 암모니아 운반선과 암모니아
추진선으로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해운업계의 탈탄소 전환에 따라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과 암모니아 이중연료(DF) 추진선이 차세대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한·중 조선사 간 기술·수주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17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한국과 중국 조선사들은 8만~9만㎥급 VLAC를
중심으로 신규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조선사들이 LNG운반선과 LPG운반선 등에서 축적한 가스선 건조 기술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하는 가운데 중국 조선사들도 VLAC 수주와 인도 실적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VLAC는 통상 8만~9만㎥ 이상의
액화암모니아를 운송할 수 있는 대형 가스운반선을 말한다. 기존 초대형 가스운반선(VLGC)과 기술적인 경계가 명확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며 LPG와
암모니아를 모두 운송할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암모니아 운송 능력과 안전성을 강화하고
대규모 장거리 운송에 초점을 맞춘 선박을 VLAC로 분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암모니아는
비료와 화학제품의 원료로 오래전부터 해상 운송돼 왔지만 최근에는 해운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위한 차세대 선박 연료이자 수소를 장거리 운송하기 위한
에너지 운반체로 주목받고 있다. 향후 저탄소·무탄소 암모니아
생산 프로젝트가 확대될 경우 국가 간 암모니아 물동량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형 운반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암모니아는
독성과 부식성을 갖고 있어 화물창과 배관, 가스처리 시스템은 물론 누출 감지·차단과 환기 등 높은 수준의 안전 설계가 요구된다. 액화암모니아의
높은 밀도를 고려한 선체 구조 설계도 중요해 VLAC는 기술집약적인 가스선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는 HD현대 계열 조선사들이 VLAC 시장에서 적극적인 수주 행보를 보이고
있다.
HD현대삼호는 지난달 유럽 소재 선사와 9만㎥급 VLAC 3척에 대한 총 5456억원 규모의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척당 계약금액은 약 1819억원 수준으로, 선박은 2030년 상반기까지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HD현대삼호는 앞서 지난 5월에도
VLAC 6척을 약 1조782억원에 수주한 데
이어 추가 계약을 확보하며 수주잔고를 확대했다. 지난달 말 기준 HD현대삼호의 VLAC 수주잔량은 22척에 이른다.
건조 실적도
본격화되고 있다. HD현대삼호는 지난달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에 9만3000㎥급 VLAC '제인 머스크(Jane
Maersk)'를 인도했다. HD현대삼호가 건조한 첫
VLAC로, LPG와 암모니아를 모두 운송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HD현대중공업도 그리스 선주 아틀라스마리타임이 2024년 발주한 8만8000㎥급 VLAC 3척을
건조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암모니아 운반선 시장 대응을 확대하고 있다.
한화오션
역시 VLAC 수주잔고를 쌓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 5월 VLAC 3척을 총 5074억원에
수주하면서 누적 암모니아 운반선 수주 실적을 10척으로 늘렸다. 한화오션은
선급과의 협력을 통해 암모니아 운반선 관련 기본승인(AiP)을 획득하는 등 관련 설계·건조 기술 확보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장난조선이 건조한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아이비코브호(Ivy Cove). [사진=장난조선]
중국 조선업계의
추격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선박그룹(CSSC) 산하 장난조선은
지난 6월 싱가포르 선사 이스턴퍼시픽쉬핑(EPS)에 9만3000㎥급 VLAC '아이비
코브(Ivy Cove)'를 인도했다.
장난조선이
자체 개발한 9만3000㎥급 가스운반선 선형을 기반으로 건조한
선박으로, 장난조선은 이를 세계 최초로 인도된 9만3000㎥급 VLAC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HD현대삼호가 머스크에 같은 크기의 VLAC를 인도하기에 앞서 실제 인도 실적을 확보하면서 중국 조선업계가 대형 암모니아 운반선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난조선과 EPS의 인연은 20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EPS는 장난조선에 VLAC
6척을 발주했으며 이는 중국 조선업계가 확보한 초기 대형 VLAC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장난조선은 이후에도 추가 수주를 확보하며 암모니아 운반선 건조 물량을 늘리고 있다.
중국 민영
조선사 헝리중공업도 VLAC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헝리중공업은
올해 들어 9만3000㎥급을 중심으로 VLAC 신규 계약을 잇달아 확보했다. 지난달에도 복수의 해외 선주로부터 9만3000㎥급과 8만8000㎥급 VLAC를 추가 수주하며 수주잔고를 확대했다.
헝리중공업은
지난 6월에는 9만3000㎥급 VLAC를 드라이도크가 아닌 선대에서 건조해 진수했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은 초대형 VLAC를 선대에서 건조해 진수한 세계 최초 사례라고 설명했다. 대형 가스선 건조를 위한 생산시설 활용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서 향후 중국 조선사들의 생산능력 확대 여부도 주목된다.
한·중
조선업계의 경쟁은 암모니아를 운송하는 선박을 넘어 암모니아를 직접 추진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벨기에 선사 엑스마르(EXMAR)가 발주한 4만6000㎥급 중형 가스운반선(MGC)에
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선박인 'ANTWERPEN'은 지난 6월 선주사에 인도됐다. 엑스마르는 이 선박을 암모니아 이중연료 엔진으로 추진되는 세계 최초의 원양 선박이라고 소개했다.
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선은 기존 선박 연료와 암모니아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선박이다. 암모니아는 분자
구조에 탄소를 포함하지 않아 연소 과정에서 직접적인 이산화탄소(CO₂)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강한
독성과 연료 취급상의 위험성을 관리해야 하고 연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소산화물(NOx)과 아산화질소(N₂O)를 제어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암모니아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까지 고려하면 실제 탈탄소 효과는 암모니아의 생산 방식과 공급망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국제 해운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압력이 높아지면서 암모니아는 중장기적으로 주요 선박 연료 후보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3년
제시한 넷제로 시나리오에서는 국제해운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암모니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30년 6%에서 2050년 44%까지
확대되는 경로가 제시됐다. 다만 이는 탄소중립 달성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로 실제 시장 확대 속도는 친환경
암모니아 생산량과 가격, 연료공급 및 벙커링 인프라 구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암모니아선 시장의 경쟁력은 단순한 선박 건조능력뿐 아니라 화물창과 선체 설계, 독성 물질 취급을
위한 안전 시스템, 암모니아 추진엔진과 연료공급시스템, 선급
인증 및 실제 운항 실적 등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
조선사들이 VLAC 수주와 인도 실적을 빠르게 확대하면서 LNG운반선을
비롯한 고부가 가스선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해 온 국내 조선업계에도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아직 암모니아
추진선 시장이 본격적인 상용화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향후 친환경 암모니아 생산 프로젝트가 실제 해상 물동량으로 연결되고 글로벌 연료공급 인프라가
구축되는 속도가 시장 확대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LNG운반선을 중심으로 전개돼 온 한·중 조선업계의 고부가 선박 경쟁이 VLAC와 암모니아 추진선으로 확장되면서
차세대 친환경 선박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